‘강해설교’는 설교자가 아니라 본문이 기초가 되고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본문의 대상과 목적인 청중에의 적용을 향해서 결론까지 나아가는 설교를 의미한다. 제이 애덤스가 말했듯이, 강해설교란 성경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청중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원 목사의 설교는 ‘본문 중심의 설교’에서 모든 설교자들이 바라고 꿈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강해설교’로 변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 이동원 목사의 설교는 강해설교다. 그는 짧지 않은 설교 사역의 시행착오를 통해 마침내 바람직한 강해설교의 모범자로 확실하게 거듭났다. 그는 실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강해설교자로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오늘날의 설교자라면 누구나 그를 통해 보고 듣고 배워야 할 것이다. 모든 설교자는 강해설교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설교가 강해설교가 아니라면 이동원 목사처럼 과감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참된 설교자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강해설교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부단히 배우고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신성욱 –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
땅굴 생존의 바탕 정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근심하는 세상 염려가 곧 두려움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패배의식이 항상 자신을 부끄러움에 노출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 살수록 더 깊은 세상 땅굴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그리고 땅의 생존 원리에 더 충실한 노예적 근성을 장착한다. 우리는 그렇게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어쩔 수 없는 생태적 정서로 부둥켜안고 땅굴 생존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땅굴을 벗어날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땅굴의 생존 본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익숙해진 땅굴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무서움이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만의 세상 땅굴에 안주하려 한다. 성경 인물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을 지목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을 꼽는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두 인물은 믿음의 온전함을 이뤄낸 신앙의 거장들이다. 그래서 신앙인이면 누구나 그들을 믿음의 본으로 닮아가려 한다.
이승재 – 달라야 한다 3
성령 안에서 집중온몸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충만한 교회에서 매주하는 성령 안에서 집중적인 온몸기도를 하면 성령의 역사로 온몸이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면서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가 정화되면서 온몸이 안정되게 됩니다. 잠간 잠간하는 것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매일 2시간 이상해야 쌓인 스트레스가 정화됩니다. 운동을 하면 기분 전환이 가능하고 심신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수면 리듬을 조절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격렬한 운동이 아니라 가벼운 달리기나 산책 등 유산소 운동도 효과적입니다. 스트레스를 느껴 호흡이 얕고 빨라질 때에는 복식 호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배가 움푹 패 일 때까지 숨을 제대로 내쉬고 배가 부풀도록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강요셉 – 정신질환 불치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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