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뜻시앗이되어교회의 이원석 목사가 20일 룻기 강해를 진행하며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원석 목사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게 봤던 드라마였다. 쌍문동 어느 골목이 배경이다. 그 쌍문동 근처에서 살았거든요 아주 어렸을 때 쌍문동 바로 이게 옆 동네에서 살았는데 그 쌍문동 어느 골목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드라마가 군데군데 보여주다”고 했다.
이어 “요즘은 사라져버린 또 그래서 너무 아쉬운 골목에 같이 살아가는 그 이웃들간에 그런 다정한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다. 식사 갈 때가 되면 어느 집에서 다른 집에 밥이라도 한 사발 보내고 반찬이라도 한 접시 보내게 되면 그 그릇을 절대로 빈 그릇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 집 반찬 과일이라도 어떻게라도 담아서 이제 돌려보내곤 했다. 그렇게 그릇과 음식이 돌면 돌수록 이웃 간의 정이 더욱더 깊어지고 풍성해졌다”고 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우리가 뭐 그렇게 오래전도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다 그렇게 이웃들간에 나누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근데 그 드라마에서 제가 이제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이 뭐냐면 그 이제 오늘 주인집이 있고 그 주인집 지하에 세 들어서 하는 집이 나오는데 그 주인집하고 세들어 사는 집 사이에서도 그렇게 그릇하고 반찬을 계속 돌리는 거다”라고 했다.
이어 “갖다주면 또 뭐가 오고, 또 갖다주면 또 뭐가 오고 주인집 아이도 그렇고 그 세 들어 사는 집 아이도 그렇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 어느 날은 윗집에서 먹고 어느 날은 아랫집에 가서 먹고 오고 가면서 같이 식사하고 같이 공부하고 함께 뒹굴면서 허물없는 그러한 친구로 자라고 성장한다”고 했다.
이원석 목사는 “이처럼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고 하는 것 누군가를 자신의 식탁에 초대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환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신학자 조슈아 지프의 환대와 구원이라고 하는 책을 보면 초대교회 당시 로마 교회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다 보면 고린도전서를 읽다 보면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 파벌이 존재했고 그 파벌로 인해서 교회 안에 아주 심각한 갈등과 분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로 그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당시에 형제교회였던 로마 교회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그 내용은 당연히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다툼과 분쟁이 그치기를 원하는 내용이었다. 근데 이제이 로마교회가 그 편지를 보내면서 그 내용 안에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임무를 예로 든다. 그 세 사람이 누구냐면 아브라함,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 그리고 오늘 우리가 룻기에서 만나는 이 보아스의 어머니였던 라합 등 세 사람의 신앙의 임무를 예로 든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환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아브라함은 창세기 18장에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온 천사들을 대접하면서 노년의 아들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주었다. 약속은 받았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그 자신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나그네들을 환대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평생의 소망이자 기도의 제목이 실현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던 롯은 자신을 찾아온 천사들을 황대함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을 때 구원을 얻게 된다”고 했다.
이원석 목사는 “또한 라합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보호해 준 결과로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 구원을 받고, 또 그런 장차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게 되는 그러한 위대한 신앙의 사람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아브라함 롯 라합 모두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환대를 베풀었고 그 결과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이 달라진다라고도 말을 할 수 있다. 결국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누군가를 환대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치와 또 그 사람에게 이미 부여되어있는 정체성을 좀 바꾸어 준다.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다르게 규정한다’라는 행위로도 우리가 볼 수 있다. 보아스가 룻을 자신의 식탁에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모습도 그러하다”고 했다.
그는 “사실 룻은 보아스 집에서 일하는 그 일꾼들보다도 사실 못한 존재이다. 그 일꾼들이 다 일하고 난 다음에 그 떨어뜨린 이삭을 주어서 먹고 살았던 그러한 이방인이었다. 그러한 룻을 자신의 식탁에 초대했다라고 하는 것은 이제 룻을 자신의 손님으로 대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친구로 대접을 하는 것이고 이제 이 새로운 인격체로 룻을 대우하기 시작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재정립되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이원석 목사는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세일이 마태를 불러서 함께 식사하시는 장면을 보면서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우리 민족을 배반한 저 세리와 함께 식사한다고 예수님을 아주 강하게 비난하는 그러한 장면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때 그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면 지금 나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이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비록 죄인이지만 지금까지는 죄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부여한 마태에 대한 정체성 대신 예수님께서 새로운 정체성을 그에게 부여해 주시면서 마태를 감싸 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눈다라고 하는 것 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 사람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교회가 바로 그러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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