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류오(latreuo)’의 여성 명사형 단어인 ‘라트레이아(Latreia, λατρεια)’는 공적인 예배를 드리거나 레위인의 직무와 같은 종교적인 사역을 집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예배 예식의 의미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이 말은 주로 성전의 제사장들이 주관하는 예배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라트레이아’는 주로 내적인 의미인 ‘샤하’와 달리 외적인 의미인 섬기고 봉사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라트레이아’는 주로 일반 백성들의 의로운 행위를 가리키지만(신 10:12),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다. 드물긴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예배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 즉 생활 태도, 윤리적인 행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기도나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불특정한 행위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편 신약 성경에서는 ‘예배’(롬 12:1, 9:4)와 ‘섬김, 봉사’(눅 2:37, 요 16:2, 롬 1:9, 빌 3:3, 히 9:1, 6, 계 7:15)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라트레이아’는 기본적으로 ‘섬김’, ‘봉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종으로서 자신의 주인을 섬겨야 할 신분을 확인시키는 일’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섬김의 대상이 상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위가 높은 자로 그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 즉, ‘라트레이아’는 자신보다 높은 분에 대한 섬김과 봉사의 의미를 갖고 있는 용어이며, 자연스럽게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섬김과 봉사의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기본이 되는 예배의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되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예배의 직접적인 의미로 ‘라트레이아’가 쓰였다(롬 12:1, 9:4).
특히 ‘라트레이아’는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고(롬 12:1), 마음과 몸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롬 1:9, 빌 3:3), 삶 속에서의 예배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용어다. 삶의 예배로서 ‘라트레이아’는 예배자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중요한 예배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롬 9:4)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이외에도 바울은 그가 보낸 서신에서 ‘라트레이아’를 약 90회 정도 사용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라트레이아’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 하나님이 우리보다 높으신 분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준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사실이지만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면 어떠한가?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이 더 높아진 적이 없다고 자신하기란 어렵다. 내 만족에 따라 예배를 즐기려하고, 나의 삶보다도 우선하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 내 기분에 따라 예배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모습 등은 분명 예배자로서의 신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자는 내 생각, 내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보다 철저히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을 높이고자 몸과 마음을 온전히 숙이는 것이 예배자로서의 기본이다.
‘라트레이아’는 삶의 예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단어다. 삶의 예배란 다양하게 표현되고 적용될 수 있지만 특별히 ‘라트레이아’가 가지고 있는 기본 의미, ‘섬김’과 관련한다면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로 채워지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라트레이아’를 구현하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 ‘지금 나의 일상의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말 한마디, 삶에서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주의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라트레이아’의 예배이며, 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수준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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