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구원을 이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특별 계시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고백하며 이 땅에서의 전인적 구원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에 향한 믿음으로 사는 존재들이다. 이 소망이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뿐만 아니라 주변인을 돌아보며 함께 구원에 이르도록 돌보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분명한 구원은 이면에 분명한 심판을 담지하고 있다. 믿으면 구원임을 확신할수록 믿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확신 또한 강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 불신의 결과를 심판으로 이야기한다. 이 심판은 구약시대 노아의 홍수로부터 이야기되었다. 홍수로 인한 멸망을 노아가 수없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방주를 쌓던 노아를 주시하지 않았다. 의롭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던 노아는 고독한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고 하나님의 물 심판은 일어났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고 사람들의 믿음과 불신과 상관없이 경고는 사실이 된 것이다. 이후에 최후의 심판이 어떻게 경고되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창9:15), 우리가 경고받은 심판은 불에 의한 것이다(벧후 3:12). 우리에게 남은 심판은 불로 인한 심판이다.
우리는 이 불 심판을 흔히 죽어서 지옥에서 맛보는 심판으로만 이해한다. 성경이 지옥 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마태복음 5:22, 새번역). 성경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 지옥의 불에 대해서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믿지 않으면 불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올 여름 이 놀라운 지옥의 불심판을 ‘살아서’ 경험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지나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를 지나면서 그야말로 ‘절절끓는’ 이상 기후 속에 살고 있다. 연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산불 뉴스가 보도 되고 있고,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외침은 이미 귀가 닳도록 듣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캐나다 북서부의 지금도 계속되는 산불은 미국의 기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스페인의 휴양지에도 산불이 발생했다. 하와이의 산불로 이미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타났다는 슬픈 소식이 들린다. 다른 나라 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이상기온으로 인한 올여름의 사고와 사건들을 잠시만 생각해보자. 이미 경고는 차고 넘치고 있다. 얼마나 더 이 고통을 보아야 우리는 경각심을 갖게 될까? 노아가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며 방주를 지은 것에 사람들이 무관심했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해서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처럼 우리는 안전불감증처럼, 경고 불감증, 심판 불감증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우리 교회에는 얼마나 생생하게 들려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 여름 교회는 너무 시원하고 너무 쾌적하다. 온갖 행사로 인해 배출된 쓰레기, 매주 주일 예배 후 나오는 탄소 찌꺼기들은 세상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이러다가는 이 땅에 다음 세대들이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가 우리만의 구원, 우리만의 행사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회는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더욱 강한 경고와 더욱 뼈아픈 실천의 몸부림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닐까?
교회가 시원해서 가고 싶은 곳이 아니길 바란다. 교회가 좀 더 덥고 좀 더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대변하기 위해 좀 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가 우리 자손만의 구원과 번영만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신 우리 인생들이 더욱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기 위해, 다음 세대에게 이 땅을 물려주기 위한 거룩한 노력을 행하는 진정한 성소가 되기를 바란다. 인간만을 지으시고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풀과 나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를 보고 기뻐하신 하나님, 이 땅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뜻이 대변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우리만의 구원만이 아닌,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구원, 우리 인간만이 아닌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선포하는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주일부터는 에어컨의 온도를 조금 높이고 조금 땀을 흘리며 조금 불편하게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경고는 우리 턱까지 차오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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