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온 세상에 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최초로 선택한 복의 전달자다. 아브라함의 자손된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을 확산시키는 복의 전달자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열방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도록 선택받고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온 세상에 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복의 전달자다. 우리는 누구인가?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땅의 모든 사람을 복 주기 위해 하나님이 흩어 이 땅에 뿌린 복의 전달자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그들의 부르심과 그들의 선교를 연결하는 중대한 연결 고리가 된다. 열방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 축복의 행위자가 되도록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 백성의 임무는 삶으로 하나님의 복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정지호 – 교회여! 온 세상에 복이 되라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하려 애를 쓰며,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했든 아니든 스스로를 자랑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멈추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심지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며 스스로를 낮출 것 같은 노숙자 분들조차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랑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강을 거슬러 헤엄을 쳐본 적이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 수 없듯, 스스로 자랑을 멈추려고 몸부림쳐 본 적이 없다면 또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스스로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우리 안에서 조용하게 일어나는 육의 생각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이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더더욱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육의 생각을 정확히 구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쉽게 그것을 멈출 수 있는지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의 생각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숙한지 아는 것조차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때로는 좀 더 세련된 육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육의 생각을 분별하는 것은 내면의 정직함을 통해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이며, 난해한 부분이 많아 여기서 자세히 다루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최재원 – 정직한 믿음
소망 없는 나 자신을 붙잡고 치덕이던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끈질기게 붙잡고 기도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하루를 돌아보며 QT일기를 쓰면서부터였다. 사소해 보이는 이 일기 쓰기를 이어가면서 내 시선은 차츰 하나님께로 옮겨갔다. 누군가에게 SOS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그래. 편지 일기를 써야겠다!’ 그때부터 내 일기의 문체는 편지체가 되었다. 때로는 주님께, 때로는 우릴 위해 기도하고 있을 지체들에게 날 위해 기도해 달라고, 제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심정으로 나의 나날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글이란 영감이 주어져야 쓸 수 있지만, 때로는 글을 쓰다가 새로운 영감이 부어져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가 펼쳐진다는.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그 말의 뜻을 알았다. 하루를 살면서 ‘오늘은 이 일을 써야지’라고 작정했던 내용을 일기장에 옮기다 보면 불현듯 새로운 깨달음이 주어지거나 하나님의 새로운 음성을 듣게 되곤 했으니까.
한근영 –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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