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박사
이경애 박사

인간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하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모방하기 잘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무엇을 따라 하라고 요청받지 않아도 어떤 상황에 단지 단순히 노출되기만 하여도 흉내 내기를 잘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외적 보상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했던 ‘행동주의’이론에 뒤이어 등장한 ‘사회학습이론’에서는 인간은 단지 어떤 상황에 단순히 노출되기만 하여도 쉽게 모방행동을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학습과정 이론을 체계화한 반두라(A. Bandura)에 의하면 아이들은 어른이 하는 행동을 흉내내고 따라하면서 어른의 행동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그는 어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한 집단의 아동에게는 성인이 인형을 공격하는 영상을 보여주었고, 다른 집단의 아동에게는 공격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본 아동들은 어떠한 지시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상을 보았는가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즉, 인형을 공격하는 영상을 본 집단의 아동이 그러한 영상을 보지 않은 아동에 비해 실제로 공격행동을 더 보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단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을 학습하는 ‘모방학습’이 이루어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방학습은 연령이 어릴수록 더 강력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타인의 행동에 강한 영향을 받는 그들의 ‘피암시성’으로 인해 주체적인 판단보다 또래의 행동을 따라하는 단순 모방 행동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청소년 아이들은 하나가 유행하게 되면 강력한 자신만의 하위 문화(sub-culture)를 형성하고 쉽게 따라 하며 강력한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최근에 또 젊은 청년의 흉기 난동 사건으로 온 나라가 공포와 염려, 두려움과 탄식으로 긴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뿐 아니라 그 후 연이어 등장한 ‘살인 예고’와 같은 협박 글이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다행히 상당수의 글은 경찰의 강경 대응으로 자진 삭제되었지만, 밝혀진 바에 의하면 10대 청소년들의 글도 있다고 한다.

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유사한 모방범죄나 행위가 발생하는 것일까? 심층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공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숨어있던 공격성이 발현될 대상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은폐시켜왔던 불안한 감정과 생각을 그 대상에게 투사시키려 하게 된다. 그래서 익명성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온갖 부정적이고 정돈되지 않은 자신의 공격성을 그 사건에 쏟아내면서 일종의 심리적 환기를 경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회 심리학적으로 보면 모방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격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공격성이 모두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때로 우리의 정돈되고 성숙한 공격성은 타인의 공격과 폭력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건강한 자기 주장의 힘이 되기도 하며, 나 자신을 세워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시적인 공격성이 성숙하고 건강한 발달적인 공격적 힘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순화되는 교육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모방을 통한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10대들의 부정적인 모방 행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모방할 만한 좋은 것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굳이 이러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만 자신의 숨어있는 원시적인 공격성이 발현되는 것이 아닌, 평소에 보다 건강하게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모델, 좋은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에서도 일방적인 교육만이 아닌 청소년들의 생각과 감정이 표현되고, 그들의 내적 세계가 공감되며 건강하게 발현될 자리가 제공된다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격성을 은폐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자신의 건강한 신앙과 비전, 생각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나눈다면 아이들에게 더욱 바람직한 역할모델이 될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더 좋은 것을 따라 하고자 할 것이다.

인간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관계적 존재라면 우리의 교회 공동체안에 배우고 흉내 낼 좋은 일들,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날마다 참혹한 뉴스를 이길 승리와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로 하여금 흉내내고 싶게 하기를 바란다. 나쁜 것이 제거될 수 없다면 더 좋은 것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더 따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것이 악한 것을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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