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는 에무나, 헬라어로는 피스티스가 믿음입니다. 그런데 둘의 뜻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피스티스는 지적 동의를 뜻합니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피스티스입니다. 우리말 ‘믿음’도 다분히 그렇게 쓰입니다. 반면에 에무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적 동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행동을 수반합니다. 전인격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믿음을 피스티스의 의미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급기야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일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야고보가 쓴 서신을 가리켜서 행위를 강조한 책이라고 하는데 차라리 왜곡된 믿음을 바로 설명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바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믿음을 바로 이해하는 데 한 조각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학종 – LET’S GO 야고보서
성경은 우리의 기쁨과 슬픔, 죄, 소망, 두려움과 갈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성경적 상담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잘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또 어떠한 상황을 만나든지 더 큰 믿음과 순종, 찬양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성경적 상담자는 내담자와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 성경적 상담자는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의 빛 안에서 무엇이 지혜인지를 내담자와 함께 구별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성경적 상담자는 하나님의 상담에 녹아진 생동감과 열정을 어떻게 우리 매일의 삶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탐구한다. 많은 그리스도인 저자들이 예수님의 맞춤식 사역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가장 긍정적인 의미로 예측이 ‘불가능’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분은 예측 불가능했지만, 그분은 자신이 대하고 있는 그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이해가 있었다. 그분은 각 사람의 갈등이나 고난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고 계셨고 각각에 따라 반응하셨다. 물론 사람의 마음에 대한 우리의 통찰이 예수님과 같은 수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수준을 추구할 수 있다.
로렌 휘트먼 – 성경적 상담의 길잡이
‘망령된 자’라는 뜻은 이렇다. ‘거룩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자.’ 에서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만 보고 ‘미래 가치’를 내다보지 못했다. 에서의 경솔함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비전이 얼마나 거룩하고 의미 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수를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만 보고 절망하면 안 된다. 미래의 가치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비전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우리 삶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게 마련이다. 우리도 당연히 걱정하고 애써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고민을 할 때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라고 하신다. 이런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로 우리의 비전이고 소명이다.
원용일 –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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