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서 신실하게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여러분에게 상상할 수 있는 것만큼 충분히 위로를 주는 진리가 아닌 것은 이번 장에서 살펴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첫 번째 국면이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당시 유다 백성이 고국에서 타국으로 포로로 잡혀간 것은 BC 7세기 말 바벨론 제국의 팽창 정책에서 비롯된 단순한 멸망 사건이나 비극적 결과가 아니었다. 다니엘 1장 2절이 분명히 하는 것처럼 유다에게 포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여호와가 여호야김왕을 느부갓네살의 권력에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겨주셨다.
이언 두기드 – REC 다니엘
사도 요한은 그 시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었던 제자로는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소중한 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레니우스는 당시 성도들이 교회든 요한의 공동체든 그리스도의 말씀을 꼭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기록 동기는 있을 수 있다. 어떻든 사도 요한의 성도들이나 독자들, 또 예나 지금의 성도들, 앞으로의 성도들에게 최고의 위로는 천국의 입성이다. 필자는 목회자로서 목회자의 안경을 쓰고 표적을 바라보고 싶다. 물을 포도주로 만든 표적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초자연적 사건임 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누가 감히 자연현상을 축소하거나 확대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양질의 좋은 포도주를 생산해 내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은 상 식이다. 심고, 자라고, 열매 내고, 그 열매를 포도주 틀에 짜서 숙성시키려 면 최소한 5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순 식간에 포도주를 만들어 낸 것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 능하다. 이 표적의 사건을 통하여 사도 요한이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은 그 리스도께서 창조주 하나님이 되셔서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다라는 사 실을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심승규 – 새 요한 신학
하나님은 그분의 빛을 가득히 비추진 않는다. 거기 있는 자들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더 많은 빛을 보여주시며 때때로 이끄셔서 그들의 양심을 뭔가 좀 더 나온 쪽으로 직이신다. 비록 그들은 생각하기를 갈망은 전적으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부터 일한다. 이것은 비록 반대방향이긴 하나 사탄이 지상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과도 동일한 방식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내적인 역사와 빛의 외적인 역사와 함께 지옥에 있는 대다수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으로 나오게 된다. 이것이 수천 만 년 걸릴지 모르나, 성취될 때는 그들이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그들은 땅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보다는 덜 행복할 테지만. 지옥은 아울러 하나의 훈련학교이고, 본향을 향한 준비 장소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거기서 고통 받기에 그곳이 자기의 본향이 아님을 안다. 사람들은 지옥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것을 즐기지 않으며, 그곳이 있게 되면 천국으로 탈출하기를 갈망한다.
이원재 – 지성이 성경에 묻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