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8차 한국 C.S. 루이스 컨퍼런스가 ‘포스트 팬데믹과 루이스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3일 서대문교회(담인 장봉생 목사)에서 열린 가운데, 이날 C.S. 루이스 서적 다수를 번역한 홍종락 번역가는 ‘예기치 못한 조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이날 행사는 워싱턴트리니티연구원(원장 심현찬)이 주최했다.
홍종락 번역가는 “C.S. 루이스와 조이의 관계는 ‘헤아려 본 슬픔’을 읽으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의 슬픔과 그에 따라오는 감정의 격랑과 신앙적 고뇌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영화 ‘셰도우랜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다뤘고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은 가슴에 오랜 여운을 안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 번역가는 옥스퍼드 대학 역사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가 쓴 전기 ‘C.S. 루이스’, 해리 리 포우가 내놓은 전기 ‘C.S. 루이스의 완성’ 등을 토대로 루이스와 조이와의 관계를 조명했다.
홍 번역가는 “평생을 독신남으로 살던 루이스는 생애 후반부에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홍 번역가에 따르면, C.S. 루이스는 조이와 1950년부터 서신교환을 하다 1952년 8월 조이가 잉글랜드로 입국하면서 12월 초 둘이서 단독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 4월 루이스와 조이는 법적인 부부가 됐다. 당시 루이스의 나이는 58세였다. 그러나 그해 8월 조이에게서 악성종양이 발견됐고, 둘이 결혼한 지 4년 만인 1960년 7월 조이는 암 투병 끝에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961년 루이스는 조이와의 사별의 아픔을 기록한 책 ‘헤아려 본 슬픔’을 출간한 후 1963년 11월 사망했다.
홍종락 번역가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에 따르면, 루이스가 당시 생활고에 시달린 조이를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결혼을 해줬지만 조이는 영국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게 된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루이스 부인으로서 권리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루이스는 그런 조이의 압력에 굴복하게 됐다는 설명”이라며 “그러나 해리 리 포우는 조이는 생활력이 강한 여성으로서 루이스의 경제적 도움을 바라며 접근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이가 암을 얻기 시작한 후 루이스와 조이와의 관계는 희생과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어쨌든 루이스는 당시 결혼에 대한 자신의 결정이 표면상 기사도적 배려 즉 우정 같은 것임을 생각한 것 같다. 왜 굳이 조이에 대해 그런 특별한 배려를 했는지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비밀로 한 채, 자신의 속마음도 솔직히 들여다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며 “그러나 체스터턴의 ‘무언가를 사랑하는 비결은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는 말처럼, 루이스는 조이의 병이 밝혀지면서 그녀를 대하는 감정 변화를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루이스는 도로시 세이어즈에게 보낸 1957년 6월자 편지에서 “제 감정이 변했습니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친구가 연인으로 바뀐다는 말이 있지요. 속도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하게 다가오는 타나토스(그리스의 죽음의 신)가 이 말에 딱 맞는 경쟁자였습니다. 잃어버릴 것이 분명한 대상은 금세 사랑하게 되는군요”라고 나왔다.
홍종락 번역가는 “루이스는 조이가 암에 걸려 사망선고를 받게 돼 조이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자 비로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며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아름다움과 애틋함, 희생적 헌신과 꿋꿋한 대처가 두드러진다. 시험은 우리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우리의 이기심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진심을 가리고 있던 위장과 가면을 벗기고 솔직한 모습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루이스는 ‘네 가지 사랑’에서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한 말에 대해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한다. 어거스틴은 절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큰 고통과 괴로움을 느꼈고, 그런 슬픔과 아픔이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며, 하나님 외의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런 생각이 어거스틴이 이교도 시절에 익힌 사고방식의 잔존물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기 싫으면 마음을 닫아야 한다는 식의 대처는 올바른 해결책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고 했다.
루이스는 그러면서 ‘네 가지 사랑’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모든 얽히는 관계를 피하십시오. 마음을 당신의 이기심이라는 작은 상자에만 넣어 안전하게 잠가 두십시오. 그러나···그 상자 안에서도 그것은 변하고 말 것입니다. 부서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뜨릴 수 없고 뚫고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루이스는 “우리는 모든 사랑에 내재해 있는 고통을 피하려고 애씀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라고 단언한다고 홍 번역가는 전했다.
홍종락 번역가는 “루이스가 ‘네 가지 사랑’을 쓴 시기는 의미심장하다. 조이와 결혼하고 조이의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돼 안정이 찾아왔던 짧은 기간이다. 루이스가 이 글을 쓸 때 조이를 사랑하면서 겪게 된 아픔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그는 사랑으로 인한 아픔까지 감싸 안음으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런 슬픔의 경험에 기초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된다. 그건 감정적 위로라기보다는 선배의 경험담이 주는 위로다”라고 했다.
루이스는 그러면서 ‘당신의 벗, 루이스’에서 “그래, 처음에는 제정신이 아니고 사는 게 아무 맛도 방향도 없지. 하지만 얼마 안 가 슬픔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게 된다네. 구비 마다 새로운 경치가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산책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라고 했다.
홍 번역가는 “이런 신앙 안에서 자신의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던 루이스였지만 ‘헤아려 본 슬픔’에서 그는 아내를 여의고 찾아오는 압도적인 슬픔 앞에서 자신의 반응을 정직하게 기록한다. 그 고통과 막막함이 너무나 컸기에 자신의 신앙이 카드로 지은 집과 같은 것이 아니었는지 묻고,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인지에 대한 의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위 책에서 아내와의 사별이라는 큰 슬픔 앞에서 개인적, 감정적, 정서적으로 씨름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금 신앙을 고백한다. 결국 사별의 아픔을 겪은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책으로 남았다”고 했다.
홍 번역가는 “루이스는 시 ‘파편이 떨어져 내리는 지금’에서 연인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이기적인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준 다리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한다”며 “사랑은 자기를 넘어서게 해준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 존재의 중심으로 삼는, 죄인인 인간의 자아중심성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조이와의 사랑이 자기를 넘어서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고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루이스는 ‘오독: 문학 비평의 실험’에서 예배, 문학작품 읽기, 도덕적 행위와 더불어 사랑은 자신을 초월하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그럴 때 오히려 자신에게 충실한 존재가 된다고 고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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