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원래 생물학적인데, 새삼 “생물학적 성”이 거론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현대 사회에 워낙 젠더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젠더이데올로기란 사람들의 생각, 느낌, 의사결정 또는 사회적 합의로서 생물학적 성을 무시할 수 있다는 이념이다. 이는 큰 잘못이다. 생물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병”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은 몸을 정신보다 하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정신이 몸을 지배할 수 있다고 또는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없다.”(마태복음 6:27), 오히려 사람은 몸의 요구에 굴복하기 쉽다. 식욕, 성욕, 공격욕 같은. “안하면 되지 뭐”라고 쉽게 말하지만,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간음하였다”(마5:28)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실로 몸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지기 쉽다. 예를 들어 몸이 피곤하면 짜증이 더 잘 난다.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정신을 만든다. 이러한 몸을 만드는 과정의 기원이 성(섹스)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사회 이전에 생명체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죽는다. 우리 인간도 탄생하고 자라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생물학적 섹스는 자명하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만 생각하면 허무하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 전에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데 희망이 있다. 이것이 남녀창조와 두 몸이 연합하는 섹스의 신비이다. 남녀 관계가 왜 신비인지에 대해, 의과학적 부분이나마 설명해 보고자 한다.
남녀가 만나면 그냥 애가 생기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은 보기만큼 단순하지 않다. 실로 복잡하고 “신비스런” 과정이 있다. 그 비밀이 크다. 현대 과학, 생물학, 그리고 의학이 이 비밀을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가 모르는 부분은 99.99%라고 생각한다.
우선 인간은 양성생식을 한다. 왜 양성생식인가? 남녀 구분 없는 인간이 있어 자기복제로 인간을 생산하면 섹스에 관련된 남녀 갈등이나 부모자식 간의 갈등이나 남자들 끼리의 싸움질이나 심지어 전쟁-트로이전쟁 같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모든 인간은 몸도 정신도 동일한, 개성 없고 일만 하는 “일개미”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일개미라면 좋겠는가? 우리가 보기에 개미의 사회는 하나의 체제로서는 완벽하지만, 의식도 문화도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 가정으로부터 태어난 남녀가 있어, 서로 만나 자식을 생식함으로 유전자들이 섞인다. 그래서 다양한 다른 사람들,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인간이라도 인간이라는 한 범주(category), 즉 한 종(species) 안에 있다. 즉 다양함도 어느 “일정 범위 내에서의 다양함”이 하나님의 창조섭리라고 본다. 우리는 이 섭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이 방식을 누가 만들었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섹스에 대한 지식은 다음과 같다: XY 염색체에 있는 DNA들이 남녀의 성호르몬과 성기관과 정자와 난자를 만들도록 한다. 또 다른 여러 DNA들이 뇌를 생성시켜 남녀 성기관들과 신호를 주고 받아 성욕을 느끼게 하고 성행위를 하게 만들고 “인간 성반응”(human sexual response)과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고 사정하게 한다. 수많은 정자 중 선택된 하나의 정자가 난자와 결합함으로 수태된다. 태아 역시 자궁 안에서 어머니의 몸과 교통하고 영양을 전해 받음으로 자란다.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일차 성징이 발달한다. 출산 후에는 젖먹기를 통해 자란다. 사춘기에 이르면 또 다시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이차 성징의 발달하고 성욕을 느끼고 섹스가 가능해진다. 이 같은 지식들이 생물학적 성의 “사실들”(facts)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들의 자세한 과정은 모른다.
우선, 성욕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잘 모른다. 뇌가 성욕을 느껴서 발기하는지, 발기하니 이를 뇌가 성욕으로 감지하는지 잘 모른다. 발기의 메카니즘에 대한 연구를 통해 비아그라를 만들었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성욕을 증가시킨다는 “마약”들이 많지만, 그 부작용과 사회적 폐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현재 인간의 지식은 대단한 것 같지만, 그 한계가 크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크다.
X, Y 염색체나, 유전자나 DNA가 무언지 알아도, 어떻게 산소원자, 탄소원자, 수소원자, 질소원자가 몇 개 모여 DNA를 구성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DNA들이 어떤 과정으로 연결되어 유전자를 구성하고 남녀를 다르게 발생시키는지 모른다. 분자생물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정된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분열하며 인간의 몸을 완성해 가는지 모른다. 성호르몬과 기타 내분비 기능이 어떻게 남녀 몸이 다르게 반응하도록 만들며, 어떻게 딱 사춘기에 이르면 새삼 “성욕”을 느끼고 짝을 찾게 만드는지 모른다. 성행위 때 나타나는 소위 “인간의 성반응“이 어떻게 그렇게 진행되는지 모른다.
짝을 찾고 결혼을 결심하고 성행위를 지휘하고, 성적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곳이 뇌이다. 성적 자극은 성기가 받지만, 이를 성욕과 쾌락으로 느끼게 되는 곳은 뇌이다. 뇌는 행동의 중추인데, 섹스의 중추는 뇌의 어디인지? 요즘은 남녀에게 성행위를 시키면서 뇌 MRI를 찍는 연구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섹스 때 뇌의 어느 부분이 작동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시상하부와 기타 몇몇 변연계 구조들로 알려져 있지만 그 부위들이 어떻게 서로 협동하여 성적 현상들을 일으키는지 아직 모른다. 뇌의 메카니즘은 비유하자면 일종 오케스트레이션이다. 그 악기 연주자 수(뇌세포수)가 800억이라 한다. 섹스 때 뇌세포는 눈, 코, 귀, 입, 피부, 성기 그리고 뇌의 기억의 창고, 등 몸 전체의 30,000,000,000,000개의 세포로부터 신호를 받아 연주한다. 하나의 뇌세포는 약 1만개 이상의 시냅스로 다른 뇌세포들과 신호를 주고 받는다. 그렇게 해서 연주되는 음악은? 이 음악은 삶의 연속, 생명의 연장이며, 생식이고 그리고 의식(consciousness)이다. 오르가즘 때 이 음악은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그러나 이 모든 메카니즘은 아직 인간에게 미지이다. 우리는 ”신비이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식물이나 개미나 침판지의 섹스도 이미 신비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서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신비 앞에서 겸손하여야 한다. 우리 스스로 만든 이론으로 설명하고 결정하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경외하고 복종하여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긴다.
한 개인은 자기결정권으로 일부러 결혼을 안 할 수 있지만, 생명을 탄생시킬 능력은 가지고 태어난다. 성을 통해 자신이 태어났다면, 성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켜야 하는 것은 책임이 아닐까? 이런 원칙을 ”억압“이라 할 수 있을까? 현대의 젠더이데올로기는 이를 억압이라 하며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세기는 남녀가 결합하고 자식을 낳는 것은 축복의 통로라고 말씀하신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성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