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 역시 성경 외의 인간적인 전통이나 통찰을 전부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교회를 다시 갱신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초대 교회와 자신들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했으며, 과거의 교훈을 기꺼이 배우려고 했다. 그들에게 개혁은 곧 회복을 의미했다.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이 모든 말 속에는 친숙한 종교개혁의 표현법이 담겨 있다. 우리는 루터나 칼뱅 등의 개혁자들이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선포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종교개혁 이전에는 이 교리가 거의 언급되지 않은 듯이 여긴다. 이는 초대 교회의 교부들이 다음과 같은 현대 로마 가톨릭교의 관점을 옹호했거나 은연중에 암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성경과 초대 교회의 교부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 18세기의 부흥 운동가들은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를 소중히 여겼다는 점에서 모두 일치하며, 복음주의자들 역시 그 연속선 위에 있다.
마이클 리브스 – 복음의 사람들
그러면 나를 위해 남겨진 날은 일주일 중 하루, 바로 오늘입니다! 누구든지 오늘의 싸움은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여성이라도 단 하루의 짐은 짊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남성이라도 오늘의 유혹은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친구들이여! 어제와 내일이라는 이 두 개의 끔찍한 짐을 더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짐입니다. 그 짐을 고의로 더할 때 우리는 무너집니다.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오늘의 경험이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후회입니다. 내일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할 때 너무 바빠서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쉬게 하십니다. 그는 초원을 너무 빠르게 달리다 보니 초원의 푸르름을 보지 못했고 그 달콤한 맛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잃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를 누워 쉬게 하시는 것입니다.
L. B. 카우만 – 골짜기의 샘
파시즘은 유대인을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이해된다. 나치가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처럼, 파시즘은 서양 문화에서 유대-기독교 전통을 제거하려고 했다. 오늘날 옛 파시즘이 부각되는 학파들이 돌아오고 있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국가 사회주의의 새로운 의식을 낳고 있다. 인종과 민족은 베오그라드에서부터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번 중심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백인 아리안 국가와 같은 신 나치 그룹들이 하위문화로 자라나고 있으며 백인들이 갇혀 있는 감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고백교회는 독일 기독교 운동에 저항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고백이라는 이름은 교회의 고해성사를 암시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루터교 콩코드 책에서 발췌한 역사적인 기독교 교회를 의미한다. 그들이 보수적이든 자유주의적이든 혹은 새로운 변증법 신학을 따르든 간에, 히틀러와 파시스트 세계관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고전적인 교리를 재강조하면서 단결했다.
진 E. 베이트 – 모던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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