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을 낳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죽어야 하는 연어처럼 나 역시 죽는 시간이 있었다. 감히 어찌 내가 죽을 수 있으랴. 내가 죽고 내 안의 예수님이 사시는 것,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님께서는 그 일을 내 안에서 이루셨다. 주님의 은혜로 나는 예수로 인해 죽고, 예수로 인해 다시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알래스카라는 나의 영적인 본향에서 새 생명을 낳기 위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연어다. 알래스카에 도착하고, 문득 내가 알래스카로 돌아가는 연어 같다고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 더 깊은 바다로 헤엄쳐 간 연어는 더 단단해진 살집과 힘을 갖게 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연어는 이제 있는 힘을 다해 새 생명을 낳을 것이고, 그리고 죽게 될 것이다. 마치 내가 한국에 가서 더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기도와 말씀과 믿음의 성장을 이루고, 믿음의 동역자들을 통해 더 단단하게 영성을 훈련받은 것처럼! 그리고 이제 나의 영적 고향이었던 알래스카로 돌아와 새 생명을 낳을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것처럼! 연어의 일생과 나의 일생이 너무도 흡사해 보였다.
윤호용 – 알래스카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
기도의 본질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관계’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기도할 제목이 있을 때만 기도하는 거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기도는 내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계’ 자체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대화하고 교제하길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모두 들으시고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도 응답하시는 분이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방법은 나의 생각과 다를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그 방법이 나에게 더 좋은 편이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결론이다.
최상훈 – 기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고 이를 습관화시켜 적용해나간다면,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예배자가 될 수 있다. 매일의 영적 예배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일생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하게 된다. 예배자로서의 영적 회복은 하나님을 날마다 예배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영향력을 끼치는 원동력이 된다. 일상의 예배자는 피상적이 아니라 영적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며 궁극적 목적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참된 예배자가 될 때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예배자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이를 위해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예배자를 위한 영성 훈련이 필요하며, 이 영성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예배자로의 회복과 영적 능력을 통해 이웃을 섬길 힘을 갖게 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가진수 – 루틴 워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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