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배를 정상으로 드렸고, 다른 교회 성도들이 집에서 비대면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답지 못해서 저희들이 드리는 대면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코로나와 함께”라는 신조어가 생기면서 대면 예배가 다시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성도들은 못된 습성이 생겼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예배드려도 되는구나! 그래서 교회 결석이 예사로워졌습니다. 쥐꼬리만 한 신앙마저도 놓치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전략은 성공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자는 더욱 경성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 시대는 환난의 전초 시기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침 받은 자만이 이 환난에서 보호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좌우편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이 둔하여져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성령의 다양한 역사를 깨닫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한의택 – 환난: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라
하나님께서 수천 년에 걸친 전 세계적인 목적을 품고 계신다는 사실에 흠뻑 빠져서 가던 길을 멈추어본 경험이 있는가? 주 예수님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나라에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멈추어본 경험이 있는가? 이 위대한 드라마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운가? 성도들이 선교에 관해 무관심해지기를 원하지 않기에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할 만한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가 얼마 후에는 “누구나 선교사입니다”로, 그 후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선교입니다”로 바뀔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와 같은 포괄적 접근은 선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 너무 좁아지지 않게 막아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세계에서 가장 멀고 어렵고 두려운 지역을 향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단기 선교 경험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세계 선교를 소개하는 도구다. 성도라면 누구나 단기로 직접 참여함으로써 위대한 사명을 위해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사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장기 선교 현장을 섬길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기도하는 선교사, 후원하는 사역, 문화의 경계를 넘는 복음 사역자를 필요로 하는 종족을 방문함으로써 복과 도전과 영감을 받는다.
스티브 리처드슨(저자), 구지원(옮긴이) - 우리의 사명은 선교다
혹자는 야고보서를 근거로 소위 ‘행위 구원’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서를 오해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결과일 뿐입니다. 야고보는 문제가 많은 교회에게 영적 사망 선고를 내리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한 게 아닙니다. 수신 교회는 선생들(약 3:1)과 장로들(약 5:14)이 포함된 조직을 갖춘 안정된 교회였으나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있었고(약 1:2-4), 무거운 억압을 받고 있었습니다(약 2:6; 5:1-11). 이 외에도 그들은 유혹, 두 마음, 말씀 듣기와 행하기, 말, 차별, 빈부, 믿음과 행위, 지혜, 싸움, 교만, 비방, 착취, 맹세, 질병 등 매우 다양한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형편 속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자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면하여 돌이키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사망 진단서(certificate of death)가 아니라 권면서(paraenesis)입니다.
이복우 – 하늘의 비, 땅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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