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불행한 결혼의 진짜 이유는 성격 차이가 아니다. 성격 차이는 원래 있는 것이다. 불행한 결혼의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보다 내 나라를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진짜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내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갈아타는 환승 열차이다.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결혼생활로도 걸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걸작품의 가치는 작가의 영광을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작품인 세상도 작가이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다.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은 결혼에서도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 나라 꽃 피우기이다.
서상복 – 결혼 플랫폼
“과연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렸을 만한 질문일 법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소위 ‘천국’이라 불리는 곳에 대한 분량은 매우 적다. 그리고 그조차 비유나 상징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기에, 무언가를 단언하기에는 지극히 조심스럽다. 다만 신학자들은 고민 끝에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 땅에서 가졌던 사랑의 관계에 따라 그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당신이 어떤 색깔과 밀도의 사랑을 했는지, 혹은 어떤 사랑을 만들어 갔는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결국 사랑이 아닌 것들은 우리 곁에서 모두 지워지고, 오직 사랑만 남는다. 무언가를 품는 듯한 ‘사랑’이라는 말과 배제하는 듯한 ‘정의’라는 말이 서로 모순의 관계로만 보였다. 그러나 사실 사랑과 정의는 서로가 함께 존재하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사랑을 토대로 한 정의만이 참된 정의이고, 정의가 구현될 때만 사랑의 진정성이 보장된다.
손성찬 – 사랑하느라 힘든 당신에게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기계나 더 좋은 기계도 아니요, 새로운 조직도 아니요, 기발한 방법도 아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성령은 기계에 임하지 않고 사람에게 임한다. 성령은 계획에 기름을 붓지 않고, 사람에게 그것도 기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습관에 견주어 볼 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초라하고 유치한가! 기도를 자신의 주된 일로 생각하고,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기도에 시간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천국의 열쇠를 맡기신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그분의 영적인 이적을 행하신다. 위대한 기도는 위대한 하나님의 지도자라는 표이며 인증이다. 동시에 그것은 또한 그들의 수고에 대해 하나님께서 씌워 주실 승리의 면류관에 대한 보증이다.
E. M. 바운즈(저자), 이정윤(옮긴이) - 기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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