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그저 받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얻는 통로가 되긴 하지만, 구원의 근거는 아닙니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을 때, ‘은혜에 의하여’는 구원의 근거를 말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는 구원을 얻게 하는 수단을 말합니다. 복음은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누가 그 일을 해야 할까요? 왜 바울이 디도의 할례를 막은 걸까요? 디도의 할례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다시 속박하게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4절). 사실 할례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디아포라(adiaphora, 비본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미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적이 있습니다(행 16:3). 그에게 의식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을 해야 했기에 그들을 위해 할례를 행한 것뿐입니다.
오경석 – 복음이란 무엇인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원주의 사회라는 사실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가 오히려 기독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공공성이라든가 공동선에 대한 메시지가 민주주의 사회의 공적 현안에 귀감을 줄 수 있는 제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밖에서 세상을 향해 정의와 공평을 외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일을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열방의 주’ ,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만약 이 고백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 교회와 개인의 영역으로만 제한되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나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미얀마의 소수 민족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최경환 – 공공신학의 눈으로 본 성경
이 책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고백된 진솔한 삶의 기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애타게 사모하며 황홀한 사랑의 나눔이 배어 있는 눈물의 부르짖음이다. 또한 나의 삶 속에서의 실수, 부서짐, 역경 가운데 꽃피운 열매들을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을 함께 나눔으로, 독자들도 하나님과 관계가 향상되고, 기도 응답이 더욱 증강 되기를 소망한다.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만인 앞에서 지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한다. 게다가 목사가 되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나이 70이 훌쩍 넘어 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젊어서 보다 더 진솔한 글을 쓰게 됨이 감사하다. 예전에는 나이 70이 넘으면 무슨 옷을 입을까?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70이 넘어도 나이와 관계없이 나를 지키고 나 답게 살고 싶은 열망에 놀란다. 앞으로 80이 넘는다 해도 목적 없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는 인생이 아닌 날마다 기적의 삶 그 시대, 그 시간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전리사 – 날마다 기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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