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부인(내려놓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일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바람이나 소원을 예수를 따르기 위해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부인함에 있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합니다. 그리고 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내려놓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연습을 매일 하므로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감을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봉수 – 광야에서의 성경묵상
이스라엘 예언자들에 관한 연구는 구약성서의 증거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까지 살피며 이루어져야 한다. 구약성서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떤 식으로든 오늘날의 교회 현실과 연관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화는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할 만큼 힘이 있지만,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기도 하다. 어떤 것이든 남김없이 성취할 수 있게 해 주는 바로 그 왕권 의식이 상상력을 억눌러 버린다. 상상력은 위험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따라서 모든 전체주의 체제는 예술가를 두려워한다. 예언자의 소명은 상상력의 목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해 주는 일이요, 또 왕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라고 주장하는 그 단일한 미래를 대신할 미래를 그려 내고 제시하는 일이다.
월터 브루그만(저자), 김기철(옮긴이) - 예언자적 상상력
베드로후서와 유다서는 서로 많이 닮아 있다. 두 서신은 모두 거짓 가르침이 교회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진리를 왜곡시키는 상황에서 쓰였다. 베드로와 유다는 신생 교회를 염려하는 목자의 마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자기 입맛에 맞게 복음을 왜곡하는 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참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집중할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두 서신을 함께 읽으면 당시의 거짓 가르침들이 얼마나 교회에 큰 위협이 되었는지 생생히 그려진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교회에 들어온 거짓 가르침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두 서신은 다른 점도 분명하다. 베드로후서는 거짓 가르침에 대해 각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집중해서 이야기하는 반면, 유다서는 전체 교회가 적용해야 할 지침을 준다. 오늘날 교회가 거짓 가르침과 싸우기 위해서는 개인과 교회라는 이 두 가지 축 중에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후서는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대한 설교다. 서론은 베드로후서 1:12-21에서 참된 예언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이 “이 서신에서 가장 위대한…보물”이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거짓 가르침과 싸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그가 받았던 참된 예언을 부르짖는 모습이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딕 루카스 & 크리스토퍼 그린(저자), 정옥배(옮긴이) - 베드로후서-유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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