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하게 안개가 내리던 어느 날, 산에 올랐습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함께 오르던 이들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길이 없는 것 같아. 돌아가자.” 부유스름한 안개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아 당혹한 그에게 선두에서 우리를 이끌던 형이 말했습니다. “걱정 마, 길은 있어.” 한참을 올라가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길은 더욱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들 웅성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아.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게 좋겠어.” 하지만 선두에 선 형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길이 맞아. 우린 제대로 가고 있어. 잘 따라오기만 해.” 길을 잃은 것 같은 두려움 가운데 발을 내딛던 우리 앞에 드디어 파란 하늘이 들어왔습니다. 정상이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길을 걸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렵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릴 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도 오늘의 그 한 걸음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걸음을 옮길 때, 하나님은 파란 하늘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카이 – 그래도 하나님의 길
아이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일시적 쾌락의 영광으로 맞바꾼다(롬 1:21; 3:23). 목욕을 해야 하거나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 아이들에게서 장난감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위로와 돌봄과 치유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솔직한 징계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죄의 무시무시함을 봐야 비로소 구속의 필요성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펄전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의 타락한 상태를 말해주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치유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부모와 교회가 다음 세대의 복음화를 위해 파트너로서 협력하도록 부르셨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협력하고 있다. 그 목적은 다음 세대가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제레드 케네디(저자), 정성묵(옮긴이) - 복음과 양육으로 세워지는 어린이 사역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전에는 모든 지식과 정보가 기억에 의해서만 전달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술 문화의 시대에는 무엇인가를 배울 때면, 그 내용을 지속 반복하며 암기하여 내면화하여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힘썼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인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 이러한 교육과 지식 전승의 전통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을 염려했다. 곧 외부에 쓰여진 문자와 글에 의존하게 되면 예전처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억력은 쇠퇴하고 진정한 지혜자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챗GPT가 생성한 답변은 정보적 측면에 있어서 정확했고, 젠더적 측면에서는 편향적이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여러 학계 및 시민 단체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제기한 많은 우려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학계는 인공지능 기술이 재생산하는 젠더 편향성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다.
챗GPT, 김규섭 외 5명 – 챗GPT 목사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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