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에 대한 직장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지난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던진 파문이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연일 동성애 진영과 기독교 진영에서 찬반 의견표명이 이어지고 있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그만큼 이 판결은 단순히 동성커플에게 피부양자 자격인정이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첨예한 쟁점인 동성애 합법화에 던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건강보험 피부양자인 ‘사실혼 배우자’의 의미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ㆍ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될 뿐이고, 이를 '동성 간의 결합'에까지 확장하여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제1심 법원(판결 1) 내용을 소개하였다. 이번에는 이를 뒤집은 서울고등법원 1-3 행정부의 판결(판결 2) 내용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사안의 개요’와 ‘당사자들의 주장’은 지난번 글을 참조하고 여기에서는 ‘판결의 요지’만 소개한다.
■ 판결 2 : 동성 커플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대우’이며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 위반이라는 판결(2022누32797 판결)
[1] 사실혼 관계 인정 여부
(1) 사실혼이란 당사자 사이에 주관적으로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도 사회관념상 가족질서적인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2) 원고(남성 A)와 동성 커플(남성 B)은 서로를 반려자로 맞아 함께 생활할 것에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으며, 상당 기간 생활공동체를 형성하여 동거하면서 서로에 대한 협조와 부양책임을 지는 등 외견상 우리 사회 내에서 혼인관계에 있는 자들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A와 B 사이에 사실혼이 성립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3) 우리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민법 역시 양성의 구별과 그 결합을 전제로 혼인한 당사자를 부부(夫婦), 혹은 부(夫) 또는 처(妻), 남편과 아내라는 용어로 지칭하며, 자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부모(父母)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4) 대법원 역시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이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바, 혼인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으로 성립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법은 이성(異性) 간의 혼인만을 허용하고 동성(同性) 간의 혼인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등으로 판시하여, 혼인의 본질을 이성(異性)인 남녀 간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혼인이 1남 1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다’ 또는 ‘혼인은 근본적으로 애정과 신뢰를 기초로 하여 남녀가 결합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여, 그와 같은 입장이다.
(5) 현행법상 ‘혼인’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석례에 비추어 보면, 사실혼의 성립요건인 ‘혼인의사’ 또는 ‘혼인생활’에서의 ‘혼인’ 역시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입법론으로는 몰라도, 현행법령의 해석론으로 동성인 A와 B 사이에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2] 평등의 원칙 위반 여부
(1)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이란 행정청이 합리적 근거가 없는 한 모든 행정객체를 동등하게 처우해야 한다는 원칙으로서 행정기본법 제9조에 의해 명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여기서 평등은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가 있는 한 차별적 조치가 가능하다는 소위 상대적 의미의 평등을 의미한다. 즉,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또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의 금지를 의미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피고(건강보험공단)가 건강보험의 보험자가 되어 피부양자의 자격 관리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청이 되므로,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된 행위에 대하여는 평등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2) 사실혼 배우자에 관한 사회보장 법령의 내용과 재량권 행사
국민건강보험법이 다른 사회보장 관련 법령과 달리 피부양자인 직장가입자의 배우자에 사실혼 배우자가 포함됨을 명시하지 않고 있고, 달리 피고에게 배우자의 범위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위임한 바 없음에도, 피고는 내부준칙인 업무지침을 통해 사실혼 배우자가 포함되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피고의 이러한 행위는 국민건강보험법이 인정하는 피부양자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비록 법령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더라도 직장가입자의 사실혼 배우자 본인에 대해서만은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스스로의 판단 아래 재량권을 행사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3) 차별대우의 확인
1) 건보공단의 주장 : 피고는 직장가입자의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하여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직장가입자의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고 있다. 피고는, 피보험자인 근로자가 부양하는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시작된 피부양자 제도의 연원 등에 비추어 보면, 피부양자 제도는 가족법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와 부양의무의 맥락에서 결정되어야 하는데, 사실혼 배우자는 민법상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부담하고, 일상가사 대리권 및 대리권 행사로 인한 연대책임을 부담하는 등 가족법 제도 내에 있는 반면 동성결합 상대방은 그러한 권리·의무가 없으므로 위 두 집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2) 피부양자제도의 취지 : 그러나 국민건강보험법의 피부양자 제도는 가족에 대한 부양을 근간으로 설계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해석과 운영은 법률적 의미의 가족과 부양의무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이러한 피부양자 제도 운영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는 점 및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가족 개념과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긍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3) 성적 지향 차별 : 비교집단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은, 그들이 ‘성적 지향(性的指向, sexual orientation)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의 상대방인 직장가입자가 그들과 이성(異性)인지 동성(同性)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행정청인 피고가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관계인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하여 하는 차별대우에 해당한다
(4) 차별의 정당성 : 자의차별금지
1) 차별과 입증책임 : 자의금지원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금지한다. 여기서 ‘자의적’이란 ‘차별을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의 결여’를 의미하며 그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어 자의적이지 않다는 점은 행정청이 이를 주장·입증할 책임이 있다.
2) 건보공단의 입증 부실 : 피고는 양자를 달리 취급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법원의 석명준비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주장·입증을 하지 않고 있으며, 피고의 전체 변론 내용을 종합해 보더라도 양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에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로 인정된다.
(5) 소수자로서의 ‘성적 지향’ 차별금지
추가로 어떠한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은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 감정, 지능, 능력, 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형적인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 유형 중 하나로 열거하는 등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6) 소결론
원고(A)는 동성결합 상대방임이 인정된다. 피고(건보공단)는 합리적 이유 없이 동성결합 상대방인 원고를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하여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처분을 하였으므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
[3] 결론
동성커플에 대한 피부양자 자격취소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하므로, 원고(A)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여야 한다. 이와 결론을 달리한 제1심판결은 부당하므로 취소한다. <계속>
서헌제(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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