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행정 1-3부는 지난 21일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가입자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하였다. 이는 건강보험 피부양자인 ‘배우자’의 의미를 “사실혼의 성립요건이 되는 '혼인의사' 또는 '혼인생활'에서의 '혼인'은 그 자체로서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ㆍ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될 뿐이고, 이를 '동성 간의 결합'에까지 확장하여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자 동성애 그룹들은 동성커플이 우리 법체계상 사실혼 관계의 이성 부부가 누리던 권리를 사법 영역에서 인정한 최초 사례로서 '혼인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 중 한 가지를 얻은 것'이라며 동성혼 합법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환호하고 있다. 반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을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은 이 사안이 피부양자 자격인정이라는 단순한 문제를 넘어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귀결된다고 보고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1심판결(판결 1)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고 다음에 항소심판결(판결 2)을 보기로 한다.
판결 1 : 남녀의 결합인 사실혼 관계를 동성 커플까지 확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2021구합55456 판결)
◈사건의 개요
남성인 소성욱은 같은 남자인 김용민을 남편으로 맞아 결혼식을 올리고 5년째 동거하고 있는 동성커플이다. 이들은 2020년 3월 건보공단에 ‘직장가입자인 김용민의 피부양자로 동셩배우자인 소씨를 등록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였다. 공단측에서는 사실혼관계 배우자는 피부양자 자격취득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건보공단은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하고 지역보험가입자임을 전제로 보험료를 부과하였다. 아에 소씨(원고)는 건보공단(피고)을 상대로 보험료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의 주장
[1] 원고와 김용민은 같은 남성이기는 하나 서로를 반려자로 맞이하여 사랑하고 부양하며 함께 살아가기로 합의하였고, 상당 기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척 및 지인들 앞에서 대외적으로 이를 선언하고 확인하여 사회적 승인도 받았으므로, 비록 민법이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상 혼인신고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사실혼 관계가 충분히 성립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피고가 그간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인 ‘배우자’의 범위에 사실혼 배우자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여 왔으므로, 원고 역시 국민건강보험법상 김용민의 피부양자로 인정하여야 함에도 그와 다른 전제에서 한 보험료 부과처분은 위법하다.
[2] 설령 민법상으로는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국민건강보험법의 사회보장적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 제2항 제1호의 ‘배우자’를 반드시 민법상 인정되는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로 국한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원고 커플이 이성의 사실혼 커플과 사회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단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보장적 영역에서 달리 취급되는 결과가 되는바, 이는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성적 지향을 근거로 하는 차별을 금지한 국제인권조약인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에도 위배된다.
◈판결의 요지
[1] 국민건강보험법상 배우자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 제2항 제1호는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중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으로서 소득 및 재산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그 외 ‘배우자’의 의미에 관하여는 별도로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다른 사회보장 관련 법률은 대부분 ‘배우자’의 의미에 관하여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는 정의 규정을 두고 있다.
건보공단 역시 과거 동성동본 금혼 조항 등에 따라 실제 혼인생활을 하고 있으나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던 사실혼 부부들을 보호할 현실적 필요에 따라 행정규칙인 ‘자격 관리 업무처리지침’을 마련하여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에도 인우보증서를 첨부하여 신고하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쪽으로 업무를 처리해 왔다. 그러한 업무처리 관행은 2005년 민법이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되어 동성동본 금혼 조항이 완전히 삭제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2] 동성간 결합과 사실혼
(1) 현행법 체계상 사실혼의 성립요건이 되는 ‘혼인의사’ 또는 ‘혼인생활’에서의 ‘혼인’은 그 자체로서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될 뿐이고, 이를 ‘동성 간의 결합’에까지 확장하여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 단어의 보편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있는 국립국어원 발간 표준국어대사전은 ‘혼인’을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로 정의하고 있고, 대다수 가족법 학자들도 ‘혼인’을 통상 ‘법률적으로 승인된 남녀의 생활공동체적 결합관계’로 정의하며 ‘이성(異性)’ 요건을 혼인관계의 근본 요소로 이해하고 있다.
(2) 시대의 변천에 따라 혼인과 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성적 지향에 대한 편견이나 사회적 인식 역시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절대 다수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혼인’을 남녀의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혼인에 관한 일반적 인식과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민법 역시 양성의 구별과 그 결합을 전제로 혼인한 당사자를 부부(夫婦), 혹은 부(夫) 또는 처(妻), 남편과 아내라는 용어로 지칭하며, 자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부모(父母)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3) 대법원 역시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이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바, 혼인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으로 성립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법은 이성(異性) 간의 혼인만을 허용하고 동성(同性) 간의 혼인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라고 판시하여, 혼인의 본질을 이성(異性)인 남녀 간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혼인이 1남 1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4) 원고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자 하는 사회보장 영역에서는 특히 보호 범위 확대 등을 위하여 사실혼의 개념을 민법에서 인정하는 것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건강 향상 및 사회보장 증진이라는 국민건강보험법의 목적을 함께 고려하더라도 기존 혼인법 질서의 유지라는 공익적 요청을 배제하고, 건강보험 영역에서 특히 사실혼의 개념을 민법 등에서와 달리 동성 간 결합에까지 크게 확대하여야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렵다.
[3] 평등원칙 위반 여부
원고는 보험료 부과처분이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행정법의 일반원칙으로서 평등원칙은 행정청의 재량권 행사를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사건 부과처분의 전제는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 제9조의 해석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것이고 거기에 달리 피고의 자의적인 재량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평등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다.
또한 헌법상 평등원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함을 금지하는 것인데, 동성 간의 결합이 남녀 간의 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양자를 구분하여 달리 취급하는 것이 그 자체로 헌법상 평등원칙에 현저히 위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4] 국제인권조약인 자유권규약과 사회권규약을 위반한 여부
(1) 헌법이 제6조 제1항에서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 것은 우리나라가 가입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것으로서, 조약이나 국제법규가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원고가 들고 있는 자유권규약 및 사회권규약의 일반논평, 개인통보에 대한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견해에 규약 그 자체와 같은 법적 구속력이 인정된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
(2)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많은 국가들이 여전히 동성혼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기는 하나, 호주,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다수 국가가 동성혼을 법으로 인정하고 있고, 또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다수 국가는 동성 커플을 위한 동반자제도(civil partnership)을 두고 있는 등, 혼인할 권리를 이성 간으로 제한하지 아니하고 개인의 자유로 인정하며, 이를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로서 이해하는 것이 점진적인 추세인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결국 혼인제도란 각 사회의 사회적, 문화적 함의의 결정체이므로, 동성혼 인정여부는 개별 국가 내 사회적 수요와 합의에 따라 결정될 일로서 원칙적으로 개별 국가 내 입법의 문제이다. 따라서 아직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해석만으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에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4]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한다. <계속>
서헌제(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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