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최철호 목사
최철호 목사(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장, 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합동총신

인간은 환상幻像을 사모하는 강력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 속에도 그러한 성향이 들어 있습니다. 환상 체험을 두 방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 행위와는 무관하게 발현시키는 자발적 환상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신비한 영적 체험입니다.

전자의 경우, 그것은 적극적인 명상과 의도적인 집중으로 일련의 환상을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신병리학의 임상을 통하여 증거되는 바입니다. 이런 자발적인 환상은 인간의 개인 혹은 집단적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형들이 의식 속으로 떠오르는 것인데, 흔히 꿈, 그림그리기, 자동기술, 최면상태에서의 진술 등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방면에 탁월한 업적을 쌓은 칼 융은 1913년에 발표한 논문 <초월적 기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구조를 갖추고 서로 관련이 있는 형태로 나타나며, 눈에 띄게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많은 환자들은 그저 비판적인 주의력을 배제하고 자유롭게 ‘떠오르게’하는 것으로, 언제라도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환상은 쓸모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특별한 재능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렇지만 특별한 연습을 통하여 이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로이 환상을 만드는 사람의 수는 무시 못 할 만큼 많아진다. 그 연습은 우선 비판적인 주의력을 배제하는 체계적인 것인데, 이로써 의식의 공백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준비되어 있는 환상을 쉽게 증가시킬 수 있다.”

후자의 경우, 그것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서의 환상입니다. 여기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 성령의 역사役事에 의한 경우입니다. 성경 속의 선지자들은 성령에 강력히 사로잡힌 나머지 꿈을 통하여, 혹은 비몽사몽간에 엄청난 환상을 체험하였습니다. 에스겔과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환상을 각각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으로 기록하였고, 바울은 환상 체험 후 기독교 박해자에서 복음 전도자로 변모하였습니다. 성경 속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환상을 체험하곤 합니다. 영성의 대가들이 한목소리로 증언하기를,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며,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일방적으로 어느 순간 주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클레어보아의 성 버나드(St. Bernard of Clairvaux)는 “이러한 경험은 평생에 한번이라도 이것을 체험한다면 대단한 것이고, 잠시 동안만이라도 체험하면 축복이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환상이 악령에 의해 발현되는 경우입니다. 악한 영인 마귀도 하나님을 모방하고 흉내를 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록한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보면, 안토니우스가 악령과 얼마나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악령은 그리스도를 흉내내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하여 나타났습니다. 독수도자 에바그리오스(Evagrios the Solitary)는 말하기를 “마귀는 기도하는 동안에 우리의 기억을 휘젓는 데 실패하면 혼・몸의 기질을 어지럽게 하여 지성 안에 이상한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당신의 지성은 생각들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쉽게 빗나갑니다. 그리하여 형태가 없는 영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대신에 미혹되어 연기를 빛으로 착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환상 체험은 대개 깊은 기도 생활과 강렬한 열망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환상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합니다. 환상은 종교 행위와 무관하게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본 환상이 정신집중에 의해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성령이나 악령의 역사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단 말입니다. 또한, 소위 ‘성령 사역자’ 가운데 여러 가지 은사를 연습이나 안수로 임파테이션(impartation전달, 나누어 줌)해 주겠다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필요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지, 연습이나 임파테이션에 의해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환상은 그것이 상령에 의한 것인지 악령에 의한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전 2:13).

시나이의 성 그레고리(St. Gregory of Sinai)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여, 조심하고 지혜롭게 자신을 지키십시오. 해를 입지 않으려면 일을 하는 동안에 당신의 내면이나 외부에서 불이나 불길, 또는 그리스도나 천사나 어떤 사람의 형상을 보아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환상을 만들어내지 말며, 그것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정신이 그것들이 주는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도 마십시오, 외부로부터 상상되거나 감명을 받은 것들은 모두 영혼을 유혹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환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뜻대로 허황된 생각으로 지어내는 빛보다 차라리 지푸라기 한 오라기가 더 좋다. 하나 손에 만져지고 느껴지는 지푸라기를 예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미친 사람의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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