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낙태 건수가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의 거의 4배에 이른다고 크리스천포스트(CP)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벌어진 낙태가 코로나19 등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에 4배에 달하고, 4년 연속으로 전 세계 주요 사망 원인 1위에 올랐다고 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인구 및 기타 지표에 대한 통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데이터베이스 월드오미터(Worldometer)가 전 세계 낙태 건수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온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4,400만 건 이상의 낙태가 발생했음을 확인했다. 이 월드오미터가 낙태 통계 출처로 삼은 게 세계보건기구(WHO)의 팩트시트인데 WHO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7,300만 건의 인공 낙태가 발생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월드오미터가 확인한 2022년 주요 사망 원인 2위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전 세계에서 약 1,3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3위는 암으로 약 800만 명, 4위 흡연은 약 500만 명, 5위 알코올 중독은 약 250만 명, 6위 에이즈로 약 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이 모든 사망자를 다 합해도 낙태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적다는 사실이다.
낙태로 얼마나 많은 태아의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지는 국내로 시야를 돌리면 한층 피부에 더 와 닿는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약 3만 2063건의 낙태가 시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2만 3175건, 2019년 2만 6985건에서 해가 갈수록 더 증가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를 위헌으로 결정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숨어서 하는 음성적인 낙태가 아닌 드러난 낙태 시술 건수가 이토록 급격하게 증가할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공식 낙태 건수는 2005년부터 매년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해 2018년에 최저를 기록했다가 헌재 결정 이후 다시 치솟고 있다.
그런데 이런 수치는 어디까지 공식적으로 드러난 통계자료일 뿐이다. 그늘에서 음성적으로 행해진 건수는 이보다 10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월 국회 토론회에서는 국내에서 하루 3000건, 즉 연간 약 110만 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있다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발표가 있었다. 하루에 3000명의 태아가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한 채 엄마 뱃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니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할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국내 낙태 건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산부인과에서 근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주로 현금 거래를 하는 데다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낙태약으로 낙태를 시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 통계 수치만 갖고도 한국은 ‘출생아 대비 낙태율’에서 OECD 1위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15∼49세 여성 8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는데 응답자 중 낙태를 경험한 여성의 50% 이상이 미혼이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출산 이후 혼자 부양의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이 낙태로 이끈 주요인임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유럽 등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들이 우리보다 낙태 건수가 현저히 적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임신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 반드시 양육비를 책임지게 하는 제도적 장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는 16세 이상의 청소년이라도 임신 책임이 있는 남성이 최소 20년간 양육비를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여성 혼자 출산 양육의 책임을 몽땅 지지 않도록 국가가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021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1949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인구 감소에 위기를 느낀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출산율 저하를 막겠다고 혈세를 쏟아부은 게 무려 225조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해마다 뒷걸음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올 1월부터 ‘부모급여’를 70만원까지 지급한다고 한다. 국가가 아기의 양육·보육을 일정 부분 책임지겠다는 건데 결혼·임신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현실에서 과연 얼마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시급한 게 혼자 아기를 낳아 키우는 여성에 대한 국가적인 뒷받침이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결심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저출산 대책은 백약이 무효할 수밖에 없다. 또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아닌 남성이 더욱 무겁게 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오늘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책임이 막중하다. 헌재가 형법상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 국회에 대체입법을 주문했는데 3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낙태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마저 사라지게 만든 주범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정부도 요란한 저출산 대책에 앞서 낙태를 권장하는 사회적 환경을 바꾸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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