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동영상 강의 하나를 듣다가 로버트슨 맥퀼킨(Robertson McQuilkin)이라는 분이 쓴 『서약을 지킨 사랑』이라는 책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를 돌보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한 남편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1949년, 뮤리엘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 로버트 맥퀼킨은 1968년, 그 학교에 총장이 되었다. 아버지 로버트 맥퀼킨의 뒤를 이어 2대 총장이 된 것이다.

그는 타고난 리더십으로 역대 어느 총장도 행하지 못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렇게 총장직을 잘 수행하고 있던 80년대 초반, 맥퀼킨 총장의 아내에게 이상 증후가 발견되었다. 바로 ‘알츠 하이머’(치매) 진단을 받고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남편이 학교에 가 있을 때 밖에 나가서 며칠간 길을 잃어버려서 다치기도 하고, 위험한 일이 계속 발생하기 시작한다. 아내가 기억상실에 빠지고 돌볼 사람이 없자, 남편 맥퀼킨 총장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임기가 많이 남았고, 학교 일을 너무도 잘 수행하고 있었지만 총장 자리를 내어놓게 된다. 교수들과 이사들의 만류에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자기는 아내를 돌보는 일이 대학의 총장 일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그 퇴임사를 직접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눈물을 솟구치게 하고 목이 메이게 하는 감동적인 퇴임사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인 필립 얀시는 맥퀼킨의 책을 추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로버트슨 맥퀼킨이 그의 집에서 아내에게 웃어 가며, 말을 시켜 가며, 뺨을 두드려 주며, 입가에 흘러내린 국물을 닦아 주며 집에서 만든 수프를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먹이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매퀼킨 총장은 자기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면에서 이 결정은, 42년 전에 내가 뮤리엘을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돌보겠다고 서약했을 때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것은 서약을 지키는 한 남편으로서 나의 성실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공정함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아내는 지금까지 나를 온전히, 희생적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40년간 아내를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빚을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무란 것은 냉혹하고 가차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의무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는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다. 아내는 어린아이같이 나를 의지하고 따르며, 따뜻하고, 간혹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재치를 발휘하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늘 쾌활하고 잘 이겨냅니다.

나는 아내를 돌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돌볼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로버트슨 맥퀼킨, 『서약을 지킨 사랑』 (복 있는 사람, 2011), 35-36).

맥퀼킨은 가끔씩 이렇게 기도했다 한다. “‘주님, 조금만 더 아내와 함께 있으면 안 될까요?’ 예수님이 아내를 본향집으로 데려가시면, 온유하고 사랑스런 아내가 무척 그리울 것이다. 물론 짜증이 나는 때도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아내를 보내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나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 참 좋다. 아내는 내 소중한 사람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영상과 책 내용이다. 나 역시 결혼한 지 34년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가난한 신학생과 결혼해서 미국에 유학 가 있는 동안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10년간 힘든 일을 하며 네 명의 자녀를 낳았다.

학위를 마친 후 한국에 혼자 들어온 남편과 떨어져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네 명의 아이들을 길렀다. 1년 반 뒤에 한국에 들어와 9년간 과외를 하면서 함께 살다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나 혼자 한국에 남겨둔 채 다시 미국에 돌아가 5년간 아이들을 공부시키다가 막내까지 대학에 입학한 후 다시 한국에 와서 같이 산지가 이제 5년 정도 되었다. 그동안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자녀들이 다 잘 되어 큰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제 내가 아내를 위해서 살아야 할 때인데, 아내는 내가 먼저 병들어 고생할 거 같아 걱정할 때가 많다. 늙어서까지 자기 고생시키지 않게 제발 건강해야 한다며, 운동도 하고 음식조절을 잘하라고 자주 잔소리한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짜증낼 때가 많았는데, 오늘 맥퀼킨 총장의 영상과 책을 대해보니 미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아내를 데려오면서 하나님과 지인들 앞에서 약속한 바를 지키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한다.

“있을 때 잘해!”란 노래가 있다. 그렇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떠나고 나면 후회해봐도 소용없다. 아직은 젊을 때, 아직은 건강할 때, 아직은 사랑할 수 있을 때, 아직은 아껴줄 수 있을 때, 아직은 병들지 않았을 때, 아직은 기억상실에 걸리지 않았을 때 최선을 다해서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되어주자. 남은 생만이라도 후회 없이 감동과 행복만 주는 삶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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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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