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가 19일 오후 제32회 창조론온라인포럼에서 ‘가야는 최초 기독교 국가였나?’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조 박사는 “과거 역사가 왜 중요한가? 창조 신앙을 역사와 연결하는 작업은 기독교 신앙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며 “하나님의 섭리론을 다룰 때, 하나님의 경륜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성경과 역사 연결은 중요하다. 그 이유는 먼저, 성경 창조 신앙을 변증해야 하며, 둘째로 성경의 역사성을 변증해야 하고, 셋째로 홍수 이전의 역사 변증의 딜레마와 넷째로 홍수 이후 성경 역사 계시의 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가 있다. 여기엔 해석을 막는 치명적 사건 3가지가 있다”며 “첫째는 인류 타락(에덴동산 추방에 따른 저주와 낯선 죽음의 우주적 재앙)이며, 둘째는 창세기 대홍수(에덴동산 상실과 지구 환경의 근원적 변화)이며, 셋째는 바벨탑 사건(인류 언어 원형 상실)”이라고 했다.
이어 “창세기 1장 변증의 딜레마가 있다. 즉 홍수 이전 사건들에 대한 결론 없는 갑론을박의 논쟁의 반복이 있다”며 “따라서 성경 계시의 역설적 권위의 회복을 위해 대홍수 이후의 성경 역사 변증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아의 후손이 셈과 함과 야벳의 이동 경로가 중요한 이유는 먼저, 대격변으로 인한 홍수 이전 역사 증거가 어렵고, 오직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세계 주요 민족 분산 경로 추척이 필요하다. 즉 성경적 창조 신앙은 역사적 진리임을 전제하기에 창조 신앙과 구속 신앙은 늘 공명해야 하고, 더불어 우리 민족 기원 추적에 있어 신학적 오류 정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박사는 “성경 속 우리 민족의 기원을 추척해 보면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 아닌 역사 속에서 끝없이 다양한 종족이 반도로 유입된 다민족”이라며 “북방계가 70%, 남방계가 30%로 유입되었고, 지도층은 주로 북방계가 장악을 했다. 셈족보다 주로 야벳 후손들이 반도의 지도층을 형성한다”고 했다.
이어 “가야국은 문헌기록에 따르면 가야(加耶·伽耶·伽倻)·가라(加羅)·가량(加良)·가락(駕洛)·구야(狗邪·拘邪)·임나(任那) 등 여러 명칭으로 쓰여졌다”며 “김수로왕은 지금의 김해 지역에 나라(금관 가야, 金官伽耶)를 세워 가야국의 시조가 되며, 우리 민족 최대 성씨인 김해 김씨의 시조이며, 왕비 허황옥(許黃玉)은 먼 아유타국(阿踰陀國) 출신이었다”고 했다.
그는 “가야 최초 기독교 국가설이 사실이면, 창조-타락-구속의 세계관을 지닌 국가가 한반도에서 세계 최초로 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기엔 가야 기독교설의 난제가 있다”며 “먼저, ‘가락국기’ 내용의 문제가 있다. 대부분 설화적이고 후대에 조작된 흔적과 건국 때부터 멸망 때까지 왕위계승의 문제, ‘가라비분’ 속 내용의 문제 등이 있고, 둘째는 허 황후 동반인들의 문제로, 가락국기 속 신보(申輔)·조광(趙匡) 등은 고려시대 이후에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성씨들이며, 허 황후 본가 문제와 인도가 아닐 경우 도마의 기독교 반도 유래의 문제가 있고, ‘가락김씨선원세보’ 속 허 황후의 남동생이 한반도 최초 불교 포교자로 표현되는 등 기독교적 인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셋째로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는 아라랏산 근처 아르메니아다. 12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 다대오가 선교한 나라 아르메니아가 로마보다도 먼저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주후 301년경”이라며 “넷째로 가야 유적의 문제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 “가락국기가 기록된 삼국유사는 승려인 일연이 저술한 것처럼 기독교적 근거보다는 오히려 불교적 각색의 증거되었다”며 “허 황후의 영향과 백제 담로의 영향을 받은 후기 가야는 기독교가 아닌 오히려 종교적 색채가 있었다면 불교적 성격의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조 박사는 “가야의 기독교적 성격이 사실이라면 불교적 각색이 훗날 이루어진 것이라 평가하더라도 불교적 각색 이전 존재하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핍박과 그 시련에 대한 편린(片鱗)이나 구전(口傳)이 있어야 하지만 없다”고 했다.
이어 “신라는 멸망한 국가인 가야 유민들의 분산 작업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으며, 가야인은 해양을 기반으로 발전한 연맹체”라며 “가야가 기독교 국가였다면 중원의 뱃길은 당나라에 와 있던 선교사들과의 커넥션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가진다”고 했다.
또한 “중원과 가야는 한반도에서 가장 일찌감치 철 산업이 발달한 두 곳”이라며 “신라는 가야의 철기 장인들을 철이 풍부한 중원 지역으로 사민, 복음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와 납달리, 평민과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 왕가보다 가야의 민초들에게 더 깊이 뿌리박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원땅은 정말 기독교인들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소통의 뱃길과 핍박을 피해 언제든 피신할 수 있는 산악 지형과 생명 유지의 젖줄 강과 하천 따라 공동체를 조직할 수 있는 다양한 지류들 존재와 생계를 위한 철과 관련된 다양한 첨단 직업들을 얻을 수 있었던 하늘이 베푼 천혜의 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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