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은 궁금증을 가진 주제 중 한 가지는 아마도 ‘기독교인이 자살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어떠한 주제이든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기준이 되는 명확한 지침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계에서 아무리 저명한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 하더라도 비진리를 진리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한 지침’이 되는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난 비진리를 진리로 언급한다고 해서 진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비진리가 진리이기를 희망하며 전파하는 시도를 했던 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분별력이 없어서 그러한 비성경적인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과정조차도 다 보신다는 사실(욥 11:11)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현실에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자살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비성경적 주장을 펼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게 된다. 그 이유는 성경말씀의 방향성보다 자신의 생각을 믿기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흔한 예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자살했다면 천국에 갔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성경에 직접적으로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구절이 언급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지옥 가는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 등이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비성경적 주장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성경적으로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침례 요한이 왜 회개를 먼저 외치셨을까?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회개해야만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 9월 1일 본지에서 게재된 한 기사에서는 어느 두 변증가는 ‘죽는 방식은 최종 (영원한) 목적지를 결정할 수 없다.’ 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아도 죽는 방법은 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살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은 성경 어디에도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또한 구원을 받았으니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에 간다는 논리는 이단 구원파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회개(repentance)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의 변화와 죄에서 떠나는 생활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고 성경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과연 자살하는 사람이 죄를 미워하는 마음의 변화와 죄에서 떠나는 생활의 변화를 포함하고 자살하는 것일까? 회개는 기독교 핵심교리이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살도 하지 않을뿐더러 회개하게 되며, 회개한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회개를 부정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둘째,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죄를 짓고 난 이후의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비교해보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세 번이나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큰 죄(요 13:38)를 범했다. 믿음이 약하고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서 이러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0장 33절에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룟 유다가 어떠한 큰 실수를 했는지를 보자.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마 6:15)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로 약속하게 되었다. 그러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이 예수님은 은 삼십에 판 것보다 작은 죄라고 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베드로는 그러한 죄를 짓고 난 이후에는 회개했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 난 후에 회개했다는 내용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 간다고 주장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남의 일로 여길 일이 아니다.
셋째로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인물들은 왜 회개했을까? 정말 회개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면 그들부터 회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또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서 그들이 회개한 내용이 기록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회개한 내용은 우연히 성경에 기록된 것이 결코 아니다. 구약에서 선지자의 가장 핵심사역은 회개해야 할 대상의 신분과 상관없이 깨우쳐 회개하게 하는 사역인데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목숨 걸고 사역했던 선지자들의 사역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넷째,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과 가룟 유다에 대해 설명하신 말씀을 비교해보자. 주님께서는 침례 요한에 대해 언급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 고 말씀하셨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침례 요한이 천국 간 것이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는데 반면에 가룟 유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설명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만약 가룟 유다가 천국에 갔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에 대한 설명을 가룟 유다에게 적용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자살한 가룟 유다가 정말 천국에 갔는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참고로 가룟 유다는 회개에 대한 행동뿐 아니라 회개해야 한다는 언급을 단 한 차례로 한 적이 없음을 성경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다섯째, 자살하는 것은 십계명 제6계명을 어기는 일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자신에게도 당연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살인한 후 진정으로 회개하더라도 사회에서 존재하는 법은 여전히 적용되겠지만, 자신을 살인한 후에는 진정으로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고도 죽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섯째,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고 말씀하셨다. 즉 천국에 가려면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후 1:8)고 기록했지만, 자살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이 자살을 실행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자살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 이전에 거듭난 사람이 자살할까? 라는 의문을 먼저 가지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성경적인 관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평생의 시간조차 너무 짧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본질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본질에 관심을 가져야 하듯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기 이전에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을 둬야 할 것이다
정의훈 목사(순복음전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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