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인 목사(움직이는교회)
김상인 목사(움직이는교회) ©큰기쁨교회 영상 캡처

움직이는교회 김상인 목사 초청 예배로 드려진 큰기쁨교회 마라타나프레이즈 정기예배에서 지난 6일 김상인 목사가 사도행전 3장 1~8절과 요한복음 5장 2절~9절을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상인 목사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에 많은 병자가 모여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린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 잠시 호주에서 청년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 적이 있다. 청년들이 호주에서 비자 문제로 수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봤다. 때론 그것 때문에 신앙을 저버리기도 하고 실족하기도 했다. 그때 희망 고문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이 귀하게 창조한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잃고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며 사는 삶을 볼 때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마음으로 울게 하셨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 말씀은 예수님이 중요한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시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 한 사람을 찾아가신다.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게 예수님의 목적이었다면 연못에 그 사람들을 다 치유하셔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목적은 치유사역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38년된 병자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이 병자가 생각할 때 병이 낫는 방법은 못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예수님께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신다. 아예 그곳에 이불을 깔고 살았다는 것이다. 병이 너무 낫고 싶은데 못에는 들어갈 수 없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는 희망고문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삶에도 떠날 수 없는 요소, 베데스다 연못같이 무엇인가 의지하고 놓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술, 돈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겐 권세, 집, 차 등 어떤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진리가 아니다. 그게 있다고 해서 우리 삶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예수님께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 희망고문을 당하면서 무한경쟁하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났더니 모든 병이 나았다. 물이 움직인 것도 천사가 내려온 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저 병자가 나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질문할 것이다. 그 38년된 병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표적”이라고 했다.

이어 “수많은 사람이 거짓 진리 가운데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살아간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38년 된 병자와 같이 예수님의 표적으로 일어나길 간절히 원한다. 복음은 충격을 주는 것이다. 복음은 가장 좋은 소식이다. 그 가장 좋은 소식이 38년 된 병자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받았어야 하는 충격이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고 삶을 살아가는 그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충격을 주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증인의 삶은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증인이다. 증인은 증명해내는 사명이 있다. 베데스다 연못이 우리 삶의 영역이라면, 그곳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걸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증명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생존은 나로 끝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부르심을 주셨는데, 생존의 부르심을 주신 게 아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생존의 영역을 넘어서 복음이 전해지는 부활과 부흥을 꿈꾸는 사람들로 서야 한다. 서바이벌이 아니라 리바이벌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리바이벌은 부활이란 의미도 있지만 부흥이란 의미도 있다. 부활은 죽고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고 썩어지고 죽어질 때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생존하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할 때 오늘도 내일도 부활이고, 그 부활의 능력으로 부흥케 하는 역사가 있을 줄 믿는다”고 했다.

김 목사는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간다. 성전은 성령님이 거하는 장소란 뜻이 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고 그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의 내주가 함께한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 전엔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이 아니었다. 성령이 임한 이후에 그들은 성전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기 전엔 성전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하시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이요 교회”라고 했다.

이어 “사도행전 3장 2절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라는 표현이 있다. 앉은뱅이는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체념하고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산다. 베데스다 연못의 사람들처럼 다른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다. 다른 진리가 있는 줄 모르고, 병이 나으려면 여기 있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체념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청년들을 보면 선택한 고통보다 주어진 고통의 문제가 더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소망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고 포기가 계속 답습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멈춰서 주목하여 우리를 보라고 한다.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을까 큰 기대를 하고 바라봤을 것이다. 그런데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충격적인 말을 한다. 그런데 내게 있는 것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저는 이 말씀 때문에 교회를 개척하게 됐다.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대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건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금과 은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소망이 없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땅의 삶이 나그네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은과 금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끝을 알고 사는 삶과 끝을 모르는 삶은 다르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걸 안다. 끝을 알고 사는 삶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체념하지 않고 소망하며 믿음 안에 살 수 있는 이유는 끝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끝을 모르는 자는 체념하게 된다. 소망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지만 그들의 삶이 쉽지 않았다. 예수님을 저주했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십자가의 길에도 무서워서 도망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끝까지 베드로를 사랑하셨고 찾아가셨다. 예수님과 함께한 모든 과정이 베드로에겐 ‘내게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지금 그걸 주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어떤 삶 가운데 있든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금과 은이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게 있는 이것이 있어야 한다. 내게 있는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에 대한 사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일들”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바쁠 수 있고 당장 필요한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베데스다 연못에 있지 않으면 좋겠다. 주님은 네가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너의 침상을 들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38년 된 병자가 어떻게 일어났는가? 예수님이 일으키신 것이다. 그게 내게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 내게 있는 이것을 놓쳐버리면 흔적을 새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어떻게 살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를 위해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건 그냥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주를 위해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교회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증인인 우리가 증명해야 한다. 내게 금과 은은 없어도 내게 있는 게 있다고 그게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증명해야 한다. 여러분의 공동체가 이 이름을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인 줄 믿는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내게 있는 이것 이 복음을 소멸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것이 전부여야 한다”고 햇다.

또 “우리가 말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곧 힘을 얻었다고 나온다. 저는 주님께 건물 안에 들어오지 못한 앉은뱅이에게 저를 보내달라고 기도해서 홍대로 가게 됐다. 우리 교회 이름이 움직이는교회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그들에게 내가 성전이 돼서 움직여서 가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교회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외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잡아 일으키길 바란다”고 했다.

김 목사는 사도행전 3장 8절에 ‘서서’라는 단어는 부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서서’는 죽음에서 살아난 자의 모습을 표현하는 언어다. 체념 가운데 있었던 아무 소망 없는 그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잡아일으키니 섰다.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소망 없이 죄의 노예였던 우리가 자유케 된 모습이 부활의 모습이다. 이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길 원한다“고 했다.

이어 “삶의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잡아 일으킨다는 건 함께하는 것이다. 이 성전에 함께 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복음의 능력과 역사가 여러분의 공동체 가운데 끊어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그런데 이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신다. 그것을 권능이라고 표현했다. 권능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이다. 나에게 집중하면 나는 할 수 없다. 내게 있는 예수님의 이름은 분명한데 그것을 전하고 잡아 일으키기에는 늘 연약해 보인다. 이 함정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 우리는 원래 연약하다. 그래서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면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한다. 주님 저는 할 수 없다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기도의 시작은 ‘그러나’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인 것을 믿는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가 바뀌고 우리의 기도가 바뀌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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