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은 환상과 상징의 언어로 기록된 책인 만큼 사람들마다 다양하고 풍성한 메시지를 묵상할 수 있는 책이다. 만약에 누군가 제게 계시록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땅에서 다양한 고난과 환란 가운데, 두려움과 낙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하지 말고 우리 가운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통치와 권세를 소유하고 누림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교회, 이기는 성도가 되십시요”라고 선포해주고 있는 최고의 Good News, 복음을 전해주고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들이 죽어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또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하셔야 시작되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 사탄 마귀의 모든 권세를 끊어 내심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이 땅의 모든 고난을 이기고, 가난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핍박과 환란을 이기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사탄 마귀는 이미 저 영원한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다. 비록 우는 사자같이 여전히 두루 삼킬 자를 찾아 다니고는 있지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권세를 얻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의 가정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의 삶 속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를 가로 막고 있는 마귀를 대적하라. 이 나라 가운데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피할 것이다. 그러면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 “내가 너희에게 천국 열쇠를 주노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우리의 문제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옛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그 믿음을 사용할 때까지 믿음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여 주여 내가 믿습니다”라고 외쳐도, 아무리 스스로를 “믿음의 사람, 신자”라고 소개해도, 그 믿음을 실제로 “활성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믿음 그 자체로는 스스로 아무런 능력도 나타내지 못한다. 그 믿음을 사용할 때, 그 믿음을 활용하고, 그 믿음을 활성화시킬 때 비로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가? 우리의 믿음이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에는 왜 이런 표적이 뒤따르지 않는 것인가?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고침 받아야 한다.
먼저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에는 크게 3 종류의 믿음이 있다.
첫째, 본능적인 믿음.: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본능”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믿음”이 있다. 그리고 이 본능적인 믿음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인간답게 살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갓난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자기 엄마와 아빠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안아주면 웃고, 아줌마가 안아주면 운다.
또한 우리 모든 인간들은 우주의 질서와 법칙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가운데 혹시 내일 동쪽에서 해가 뜨지 않을까봐 불안해 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분 계신가요? “길을 걸어가면서 저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나,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땅이 꺼져 내리면 어떡하나” 염려하면서 길을 걷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앉으나 서나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둘째, 이성적인 믿음: 이성적인 믿음은 본능적인 믿음에 더해서, 교육과 경험 또는 과학으로 입증된 사실에 관해 의심하지 않고 믿는 믿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동차든 전철이든 비행기든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고철 덩어리에 우리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이유는 그것에 대한 “이성적인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에 대한 이성적인 믿음이 없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맡길 수 있겠나? 은행에 우리의 평생 모은 돈을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은행에 대한 “이성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것이 “본능적인 믿음”이든, “이성적인 믿음”이든,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바꿔 말해서,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불신만으로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생활,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온갖 두려움과 염려, 근심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결국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말라 비틀어지게 될 것이다. “공황장애”가 그런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본능적인 믿음이나 이성적인 믿음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허약해진 것이다.
셋째, 영적인 믿음: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인 믿음과 이성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이고 이성적인 믿음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물질세계를 초월한 영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우리의 본능이나 이성으로 바라볼 때 얼마나 미련한 일로 보이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 미련한 방법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우리의 본능이나 이성이 아닌 “영적인 믿음”으로 십자가를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누릴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영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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