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간에 걸쳐 세계적으로 6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 사태가 이제 거의 진정되어 가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긴 터널과 같은 답답한 코로나의 상황을 이제 거의 빠져 나오게 된 것이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백신의 효과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약한 변이의 등장이었다고 생각한다. 흔히 집단면역이라고 알려진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노출되고 맞닥뜨려도 예전만큼 생명의 치명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고 이겨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져야 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생명의 위협을 가하며 상존하더라도 이와 맞닥뜨려 이겨내게 됨으로 극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승리를 가져오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돌파" (break-through)이다. 백신을 접종해도 코로나의 전염성이 우세해서 감염되는 것을 가리켜 흔히 "돌파 감염"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와 반대로 코로나를 이겨내며 극복하는 것을 가리켜 동일하게 "돌파"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돌파가 가져오는 승리의 중요한 요소들을 보게 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돌파를 "쳐서 깨뜨려 뚫고 나아감"으로 정의해 주고 있다. 상대하는 두 다른 능력이 맞닥뜨린 싸움에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대를 무너뜨리고 통과해 나아가는 것이 돌파이다. 바로 이 "돌파"가 이번 코로나 사태의 종식을 바라보는 현상황을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초기의 대처는 코로나의 치명성이 워낙 컸기에 이에 접촉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며 막는 것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지금까지 사회적 격리와 마스크를 통한 보호였다. 그러나 이러한 격리와 보호는 임시적인 방편일 뿐 최종적인 승리는 결국 코로나를 직접 맞닥뜨려 이겨내는 돌파에서만이 가능함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가는 현상황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돌파는 상대와 맞닥뜨려 싸워야 하고, 그 상대와 맞닥뜨렸을 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돌파의 방식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에 침투해 들어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는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태복음 12:29)
모든 인생이 피할 수 없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와 죽음의 문제이다. 어느 인생도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자기 힘으로 돌파하며 이겨낼 수 없다. 오히려 죄와 죽음이 그들을 돌파하며 삼켜버리고 만다. 올 해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지나면서 성도들과 나눈 메시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내신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승리의 돌파였다. 어느 인생도 예외 없이 죄의 권세에 돌파 당한 채 죽음의 증상가운데 놓인 상황가운데 하나님은 친히 인생의 문제에 참여하셔서 죄와 죽음에 맞닥뜨리며 돌파하시며 승리로 나아가셨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요즘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암으로 죽고 육신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고난들을 마주하는 것에 성도들이라고 결코 예외가 되는 것이 아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구원하심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여전히 이 땅에서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오랫동안 제기해 온 이 신정론의 질문에 대해 이 "돌파"의 개념은 한 좋은 대답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능력의 돌파는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하신 성도들을 통해 드러난다. 그 돌파의 능력은 성도들 가운데 모든 위험과 장애요소가 없는,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영향력도 없고 죽음과 그 죽음이 대표하는 모든 고난이 사라져 버리는 가운데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백성들을 죄와 죽음과 맞닥뜨려 싸워 돌파하는 가운데 영광의 승리로 인도하심을 통해 드러난다. 시편 23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목자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성취하신 그 돌파의 능력은 믿음으로 그와 연합한 성도들에게 돌파하는 능력으로 지금 함께 하고 있다. 마지막 고난의 시기를 지나 영광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여정을 가리켜 성경은 자주 해산의 고통에 비유한다. 아이를 가진 산모가 아무리 해산의 고통이 힘들더라도 반드시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기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살전 5:3; 요 16:21). 믿음이 가져오는 능력은 고난을 통과하여 최종적인 승리와 영광으로 나아가는 돌파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돌파의 개념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영적싸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과거 구약 백성들의 신앙의 여정도 이러한 돌파의 연속이었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은 죽음의 사자에 의해 죽음을 당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를 통해 죽음의 사자를 통과하여 넘어갔고, 이스라엘은 그들 앞에 가로막힌 홍해를 통과하며 지나갔지만 애굽 군대는 그 홍해의 물에 다 삼켜버린 바가 되었고, 믿음 없는 자들은 모두 광야를 넘어가지 못하고 거기에 쓰러졌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음으로 붙들고 나아간 자들은 광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또한 동일하게 "죽을 몸"(롬 8:11)을 가지고 예외 없이 인생의 약함과 고난이라는 죽을 몸의 증상들을 짊어지며, 최종적으로 죽음을 또한 통과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에 삼켜버린 바 되지 않고 오히려 돌파하며 최종적인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죽음을 돌파하여 승리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지금 여러 시험들을 믿음으로 이기며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돌파하는 능력으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영혁(센트럴신학교 신약학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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