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와문화)가 최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가입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발표하는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는 11개 항목을 기준으로 삶의 질과 만족도를 평가한다”며 “우리나라는 시민참여·안전·주택·교육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은데 반해, 환경·건강·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워라밸’)·수입에서는 평균을 훨씬 밑도는 점수를 얻었다. 이중 우리나라가 수년째 최하위권에 속하는 항목은 놀랍게도 공동체 지표”라고 했다.
이어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조사 대상 국가들 중에서 그야말로 꼴찌를 차지하다가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는 세 나라를 제치고 부상(?)했으나 여전히 최하위권이다(41개국 중 38위).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8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OECD 평균인 91퍼센트보다 낮은 수치”라며 “사회적 연대의 약화는 경제적 위기와 관계적 고립을 불러일으켜 삶의 만족도를 저하시킨다고 이 조사는 말한다. 전통적으로 두레, 향약, 품앗이 같은 이웃 공동체가 강했던 이 나라에서 사회적 관계의 급속한 와해는 큰 숙제가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근본적 관계는 가족이다. 가족 간 분화가 증가했다는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상황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고 한다”며 “그럼에도 가족의 형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변화가 감지된다. 가족은 소중하지만 그 형태는 유연해야 하고 구속적이어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가족적 의무감보다는 심리적 동반의식이 더 중요해졌다. 가족의 소중함은 개인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몇 년간 가장 대표적인 준거집단인 가족, 회사, 교회까지도 관계와 공동체의 진화를 겪고 있다. 진화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적응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소속과 연대의 의미도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며 “그런데 이러한 개인취향과 자기존중의 문화에서 얼리 버드들이 선제적으로 트렌드를 끌어가는 듯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전체 문화를 지배하는 양식으로 확산되진 않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원래 한국 사회는 집단적 위계주의가 강한 문화이며, 가족적 유대감은 대부분의 조직에서도 권장되었다. ‘우리가 남이가?’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 ‘가족 같은 회사’ 등의 끈끈한 연대는 가족, 일터, 교회까지도 지배해 왔다”며 “지금도 연줄 문화의 체취는 슈퍼개인의 옷으로 바꿔 입는 와중에도 진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또 “이러한 관계 문법의 전환기는 교회의 선교적 전진기지가 세워져야 할 지점이다. 생활의 모든 선택 기준이 개인의 미세한 욕구에 맞춰 파편화되고, 끼리끼리의 연대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공감력을 기르는 일은 구성원들의 급선무가 되었다(트렌드 코리아 2022, 191)”며 “선거 때마다 우리 사회는 세대 간, 성별 간, 정체성 집단 간 대립으로 몸살을 앓는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갈등을 겪지만, 한국 사회의 파편화는 취약해진 공동체 의식으로 인해 더욱 증폭되는 것 같다. 사회적 유대감이 약화되고 신념과 취향의 간극이 벌어지는 시대에 이 간극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 아닌가”라고 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 이후의 교회는 기독교적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를 깊이 탐색해야 한다”며 “‘공동체로 산다는 것’의 저자 크리스틴 폴은 기독교 공동체의 핵심적 실천 네 가지를 감사, 약속, 진실함, 손대접으로 보았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존재를 감싸고 있음을 믿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약속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바탕이다. 진실함은 상호 신뢰의 원천이다. 손대접은 테두리 밖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맞이하는, 그래서 사회적 유대가 와해되어 가는 이 시대에 저항하는 급진적 실천”이라고 했다.
이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철저하게 계층화된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귀족으로부터 평민과 노예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족 됨을 경험하는 실천으로 제국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교회는 그 어느 곳보다 역사적으로 이처럼 새로운 연대로서의 관계를 위한 가장 강력한 유산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이라는 복음의 유산”이라며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수평성과 개방성을 회복한다면, 그러나 복음의 메시지가 개인이 자기들의 삶에서 안고 있는 과제들을 해석하며 해피엔딩의 스토리로 그들을 인도한다면, 관계 결핍의 시대에 교회의 선교적 잠재력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러한 잠재력은 성직 계급이나 교회 건물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복음을 믿고 복음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의 장소와 개인의 공간에서 이웃을 초대하고 환대하는 실천을 통해 구현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국 교회에는 이미 구역, 셀그룹, 소그룹, 목장, 가정교회 등의 축적된 공동체적 연륜과 경험이 있다”며 “제도로서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와 같은 기존의 공동체적 역량을 세상 속에서의 작고 진실한 관계에 헌신하도록 성도들을 격려하고 공동체를 연습하게 하며(공동체의 문화는 연습을 통해 체화된다), 교회의 테두리를 넘어서 선교적 공동체로 담대히 나아가도록 후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