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웨스턴이 쓴 ‘창조적 비판의 요령’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보면 간단한 퀴즈가 나온다. 어둡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당신은 멋진 2인승 소형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한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서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은 당신이 모르는 낯선 사람인데, 마침 심장발작을 일으켜서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옆의 다른 한 사람은 예전에 당신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 오랜 친구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놀랍게도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 또는 여자다. 한 사람만 태울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차에 태우겠는가?
이 퀴즈는 어느 한 회사가 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낸 질문이라고 한다. 수백 명의 지원자들 가운데서 회사에 의해 채용된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동차 키를 나의 오랜 친구에게 주고 그더러 낯선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꿈에 그리던 여자와 함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 멋진 대답이지 않은가?
이런 대답이 스윗 스팟이다. 스윗 스팟(Sweet spot)은 스포츠 용어다.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혹은 탁구 라켓 등에 공이 맞았을 때 원하는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가장 빠르게 날아가는 최적의 지점을 말한다. 테니스 선수들이 서브 득점이나 패싱샷을 성공시킬 때는 언제나 테니스 라켓의 스윗 스팟을 칠 때라고 한다. 공이 라켓의 정확한 지점에 닿으면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나고 청명한 소리까지 들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도 스윗 스팟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곳, 매일 넘치는 의욕으로 살 수 있는 곳,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 그 안에 살면 그야말로 살맛이 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답답하고 무미건조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비록 우리 삶이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문제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최적의 지점, 최적의 삶이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이 등장한다. 당시 유대 나라는 고대 근동의 강대국이었던 바빌론에 의해 망하게 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2장 1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꾼다. 왕은 바빌론의 지혜자들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고 해몽하는 자에게 큰 상을 주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다(5-9).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왕의 요구를 충족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화가난 느부갓네살이 바빌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문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문제해결의 스윗 스팟은 무엇일까? 우리 인생에 난관이 올 때 가장 좋은 해결책, 스윗 스팟 안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로, 지혜로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바빌론의 지혜자들을 죽이기 위해 찾다가, 다니엘을 만나게 된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다니엘의 태도를 보라. 14절에 보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물어보았다고 한다. 지금 사형을 집행하러 나온 근위대장 아리옥이 왜 다니엘을 죽이지 않고, 자세하게 사건의 배경을 말해 주었을까?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롭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먼저, 여기서 명철하다는 것은 침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억울하게 죽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침착할 수 있었을까? 다니엘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었기에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하루아침에 명철함을 갖게 된 것이 아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온 뒤에도 그는 하루에 세 번씩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날마다 경건훈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26:3). 주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평강의 선물을 주신다.
또 하나 다니엘은 슬기로운 말로 접근한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근위대장 앞에서 지혜롭고 조심스러운 말로 접근해 도움을 얻어낸다.
복음서를 묵상해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란다. 그분의 말씀은 지혜롭고 은혜가 충만한 말이었다고 한다(눅4:22).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무엇을 느끼는가? 은혜를 느끼는가? 은혜를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고, 지혜롭다고 느끼는가? 예수님처럼 은혜와 지혜가 충만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길 바란다. 우리 언어의 영성이 주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축복한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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