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원 교수(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가 지난달 30일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홈페이지에 ‘하나님은 응답하실 의무가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서 교수는 “설날이다. 설은 ‘사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가다’, ‘조심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쇠다’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여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말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설날은 일 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새기는 명절이라고 친구 목사님의 설명을 읽었다”며 “새해 저마다 소원을 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계획한대로 혹은 바라던 대로 성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쉬움을 잔득 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옛날은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올해는 다 하늘에 상달되는 은총을 누리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이어 “기도는 모든 종교가 다 가르친다. 소원을 비는 것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잘 됨을 바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다. 나는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간구하는 소원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물론 내 기도를 들어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한다. 실질적으로 예수께서 그렇게 하라고 약속하셨다”며 “그렇다고 뽑기처럼 우연의 일치로 행운이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원들을 나열하고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맞아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으면 뽑히고 좋지 않으면 탈락이라는 등식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의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독교인의 간구는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믿음으로 구하는 행위”라며 “의심치 말고 구하는 것이 응답의 비결이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처럼 받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교훈하고 있다(약 1:6~7). 실질적으로 예수님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하셨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그러니 기독교인의 소원만큼 확실한 보증이 있는 최상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분명한 약속이 있음에도 왜 소원대로 되는 일이 적을까? 여기에 대한 답도 성경은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다 소원을 아뢰지만 정욕대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약 4:3). 기도 응답에 대한 긍정적인 교훈을 따라 응답이 없는 것은 믿음으로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며 부정적인 교훈은 내 자신의 정욕대로 쓰고자 잘못 기도하기 때문”이라며 “욕심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나? 그런들 응답 없는 것이 응답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악인들이 형통하고 잘 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정욕대로 쓰려고 구한 것이 아니라서 하는 것마다 대박인가? 그들이야말로 욕심을 낼만큼 다 부리는 자들인데. 나 같은 그리스도인은 큰 욕심도 아니고 물론 그렇다고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복을 부어주시면 한결 좋은 일 많이 하며 살 텐데 왜 하나님은 바라는 것만큼도 허락하시지 않으실까? 우리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금세 파악하실 것”이라고 했다.
또한 “설사 하나님이 인정하는 기도라고 할지라도 금방 응답하시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시간에 응답하시는 경우도 많은 것을 안다.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으로 교훈하시는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도 같은 결과를 낳게 하신다”며 “때로 응답이 없는 것이 내가 백 번 천 번 나을 수 있다. 다만 무지해서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원망거리 삼는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기도 응답이 없는 하나의 이유를 더 언급해 보자면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에서 기도 응답이 없는 이유가 뭐라고 하시는가”라며 “그것은 내 속이 주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기에 내 기도의 내용, 소원이 주님의 말씀에 통제를 받지 않고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아뢸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다. 사실 확실한 기도 응답은 그 분이 약속하신 말씀을 증거로 들이미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의 약속은 언제나 확고 불변한 말씀이다. 그가 말씀하신 것은 다 성취되었고 아직 미진한 것도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조석으로 뒤바뀌는 내 자신이 문제이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이 문제될 것 하나도 없다”며 “그러므로 확실한 기도 응답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따라 간구하는 것이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한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고 주를 욕할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신다. 지키지 못할 상황이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바꾸실 능력도 있으셔서 언제든지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역사하실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마치 채무자처럼 기도를 응답할 의무가 있으신 분인가? 무슨 일이든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개인의 일들이나 역사와 인간 개개인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말미암는 것들이다. 참새 한 마리조차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는 법이 없다. 그의 주권을 생각하면 그가 응답하든 하지 않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달린 것이지 피조물인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셔야 할 의무를 진채로 존재하는 분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며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 빚을 진 채무자에게 닦달하여 빚진 것을 받아내듯 내가 하나님께 그렇게 성가시게 굴어서 반드시 얻어내고 마는 채권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기도하는 자는 채권자가 아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채무자는 더더욱 아니”라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우리의 아픔을 통촉하시고 가장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방편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길로 응답하실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너도나도 한다. 빈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비는 바램이다. 다만 욕심이 과하면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아시는 주님이 욕심 부릴 때 거부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피해야 할 것은 교만 떠는 일”이라며 “사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재물이든, 내가 쌓는 선한 일이든 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물론 각자의 피나는 노력이 들어 있을 것이다. 남다른 기지와 능력을 발휘해서 쌓은 업적일 수 있다. 그래도 그 지혜와 지식과 능력은 다 모든 좋은 것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