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가 지난 2일 삼일교회 2부 주일예배에서 ‘희망은 고난보다 오래 산다’(마태복음 15:21~28)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송 목사는 “몇 시 몇 분을 가리키는 시각과 달리 듀얼 타이머는 두 개의 시간을 가리킨다. 하나는 크로노스의 시간, 하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1년 365일 흘러가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과 달리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심어주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언제든지 소환이 가능하고, 기억하게 하고 기념하게 하고 추억하게 된다. 어떤 이에게는 1월 1일 새해 첫날도 크로노스의 시간일 수 있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어느 한 시간이 누구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크로노스를 사느냐, 카이로스를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고 했다.
이어 “본문에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산 한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이 아프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흉악한 귀신이 들렸다고 적혀 있다. 죽음에도 인칭대명사가 있다. 3인칭의 죽음은 그들의 죽음이다. 잠시 놀라지만 잊혀지고 기억하지 않는 크로노스다. 2인칭의 죽음은 가까운 지인, 친척의 죽음이다. 2인칭의 죽음으로도 사람은 끄떡하지 않는다. 정작 사람이 놀라고 충격받는 것은 1인칭의 죽음이다. 내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가 1인칭의 죽음”이라고 했다.
이어 “내 딸이 귀신들렸다고 생각하면, 어미의 심정이 어떨까. 너무 처절하고 절망적일 것이다. 여인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유일한 무기가 하나 있다면 소리 지르는 일이다. 그런데 외면당한다. 예수님께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때 제자들이 견디다 못해 나선다. 그때 예수님께선 이스라엘의 어린 양을 돌보기에도 무척 바쁘다 답하신다. 여인의 심정이 서러웠을 것이다. 이 순간 여인이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엎드려 절하며 가로되’ 우리 인생사에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바뀌기 위해서는 딱 하나 답이 있다.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런 간절함이 있는가. ‘오직 주 예수만 내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인생의 희망입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처절하게 울부짖어본 경험이 있는가. 절박함이 사라지면 우리는 대충 대충 산다”고 했다.
그는 “가정사역자로서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문제는 가정이 붕괴하고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들이 서로 너무 힘들어한다. 때로는 자식이 아버지의 속을 뒤집어놓을 수도 있고, 배우자 간에 서로 성격의 부조화로 고통스러워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뭐냐고 묻는다면 딱 한 마디로 답해드리고 싶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가족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라. 모든 사람이 질타하고 포기하고 외면할 때도 포기할 수 없는 그것이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은 끝까지 우리의 희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살다 보면 좌절하고 한숨 짓고 절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는 것은 더 어렵다. 사과 속의 씨앗은 누구나 헤아릴 수 있지만, 씨앗 속의 사과는 하나님만이 헤아리신다. 내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여전히 버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붙잡아야 하는 것 하나가 있다. 희망이다. 이 여인이 어떻게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전환할 수 있었는가. 딱 하나, 희망의 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지옥편> 첫 문장이 ‘여기서는 희망을 버려라’다. 희망이 사라진 곳이 곧 지옥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코로나가 우리를 힘들게 해도 새해를 시작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망이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 목사는 “여인의 말에 큰 모순이 있다. 귀신들린 건 딸인데, 여인은 딸이 아니라 나를 도와달라 불쌍히 여겨 달라 간청한다. 현대가정의 비극이 하나 있다. 마지막 희망이어야 하는 가정이 희망을 버리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는 탓 증후군이 있다. 조상 탓, 환경 탓. 이 탓을 버리지 않는 한 절대 가정은 치유되지 않는다. 그저 주 앞에 나와 말없이 눈물을 흘릴 때 절망의 희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이면 우리의 병이 치유된다. 고칠 수 없는 고질병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고칠 병이 된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성능 좋은 권총이라도 총알을 제거하고 나면 장난감에 불과하다. 누가 방아쇠를 잡아당겨도 총알이 튕겨 나가지 않도록 마음의 총알을 제거해야 한다. 마음의 총알은 역기능, 쓴 뿌리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 낮은 자존감, 무엇보다 열등감이다. 탓할 것 없이 고쳐야 할 건 우리 자신”이라고 했다.
이어 “이 엄마는 누구를 탓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에게 집중한다. 예수님의 반응이 두 번째는 더 모질게 나온다.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는 개에 비유해버린다. 모욕이 모욕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욕받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모욕으로 접수하지 않으면 모욕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내가 모욕으로 접수해서 키워간다. 이 여인은 왜 모욕을 모욕으로 느끼지 않는가. 이 여인이 붙잡았던 것은 인생의 뚜렷한 목적이었다. 내가 어떤 수치와 모욕을 당해도 내 딸이 나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다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을 붙잡았을 때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로 전환되는 것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세상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원망할 일이 없다. 이 여인은 모멸감에 갇힐 수도 있고 노예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NO’를 ‘ON’으로 바꿔버린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인생의 변곡점은 다른 게 아니라 역발상”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 인생을 새로운 변곡점으로 이끄는 두 개의 훌륭한 스승이 있다. 첫 번째는 죽음이다. 코로나는 지금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온 게 아니다. 우리의 시선을 다시 주님께로 모으라는 강력한 메시지일 수 있다. 우리는 자꾸 변종바이러스, 돌파감염, 항체 이런 것에 매달리고 있다. 죽어가는 시신 앞에 한 번이라도 내 인생을 조망해 본 일이 있는가. 코로나 집단면역 이런 문제를 떠나서 어느 순간 찾아올 죽음 앞에 저는 준비된 사람인가를 주님께 묻는다면 새해 시작하는 하루하루가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또 하나 인생의 변곡점으로 인도하는 것은 질병이다. 이 여인은 딸이 아프지 않았으면 만나보지 못할 주님을, 딸이 귀신들리지 않았으면 완성시키지 못할 그 놀라운 믿음의 칭찬을 듣게 된다.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우리 인생사 질병, 고통, 시련 등 원치 않은 일 때문에 자주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그때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인생의 허들 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희망을 붙잡고 일어서는 일”이다.
송 목사는 “벌써 코로나가 3년째로 접어들면서 많이들 지쳐있지만, 크리스천들은 우리 주님이 희망이시다. 여인이 주님 앞에서 떠나지 않고 모멸감에 느껴지는 순간에도 포로로 잡히지 않고 ‘NO’를 ‘ON’으로 바꿨던 것처럼 우리 모두 그런 1년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신년 첫 주일 이 다짐으로 주님 앞에 간구하고 주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송길원 목사는 선교사 숙소 후원전달식을 가진 삼일교회를 향해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송태근 목사님께 선교사들의 처절한 아픔을 말씀드렸는데, 그 얘기를 붙잡아 주시고, 가슴에 새기셨다. 귀한 일로 한국교회에 희망이 되어주신 것에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우리 모두 올 한해 내 인생의 카이로스를 찾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인생의 복 중의 복은 전화위복이다. 이 복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꾼 여인의 삶이 내 삶의 방정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방황하는 홈리스처럼 되어버린 선교사님들을 가슴으로 품어 긍휼을 베풀게 하시고, 환대할 넓은 가슴을 주시기를 바란다. 삼일교회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소식이 더 많은 교회의 동참과 함께 선교사님들을 품게 되기를 바란다. 인류사에 아픈 일들이 되풀이될지 모를 그때를 생각하며 아름답게 완공되고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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