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교회가 신년금식집회 ‘EXODUS 2022’를 지난 1일 정오부터 자정까지 진행했다. 신년집회 1부 한혜성 원장(한혜성 조이의원), 2부 도원욱 목사(한성교회 담임)에 이어 마지막 3부는 김병년 목사(다드림교회)가 ‘내 힘의 근원, 예배’(삿 16:16-22)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병년 목사는 “출애굽을 생각하면 죄를 떠난다는 것만 생각하는데, 출애굽 다음에 광야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건설해야 할 나라가 있다. 엑소더스는 프롬(from) 무엇에게서 나와서 투(to) 무엇무엇에 이르러야 한다. 약속이 성취되는 자리에 이르는 것이 바로 엑소더스”라며 “출애굽처럼 죄의 자리를 떠나는 것만 강조하지 말고, 회개 이후에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사사기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즉 성도가 되어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준다. 열두 사사 중 마지막 인물인 삼손은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돼 있지만, 그의 삶 전체가 다 믿음으로 산 것은 아니다. 삼손은 이방 여인을 사랑하고, 창녀와 관계를 맺는다. 나실인이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골라가면서 언약을 깨뜨리는 행동을 한다. 마음의 충동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나실인의 증거를 다 가지고 있지만, 속사람은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 외적인 힘이 굉장히 많았지만 내부적으로 찾아오는 욕구를 다스리는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며 그의 삶에 위기가 찾아와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않은 이유는 그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삼손은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의 문제는 이 모든 일을 할 때 마지막에 삼천 명을 죽이는 사건 외에는 단 한 번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그가 힘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삼손은 언제나 힘을 썼지만 문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숭배하는 그들을 멸하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손이 한 모든 행동은 다 자기 원한을 갚는데 하나님의 힘을 사용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하나님이 언제든지 구해주시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내 삶에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이미 마음에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하나님이 역사하실 거로 생각한다면 한 번에 훅 가는 인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삼손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힘만 쓰면 이겼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떠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나님을 떠난 모습은 마음에 간구가 없다. 간구하는 형식은 있지만,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진실한 간절함이 사라졌다. 간절함은 우리의 정성, 열심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내 마음에서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없이 무엇을 구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삼손에게 힘을 주셔서 블레셋을 치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전의 사사들은 등장하면 블레셋을 압도적으로 다스렸다. 삼손은 40년간 사사로 있었지만, 그가 통치하는 20년 동안 오히려 블레셋의 지배를 받는다. 삼손이 사사로서 힘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삼손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게 사사로 힘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할지라도 이방 여인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정욕을 다스리는 삶을 하나님이 더 원하셨던 것”이라고 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하나님께 쓰임만 받는다면 자기가 꿈꾼 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면서도 언제나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고 말하는 게 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을 오늘 이 시대 찾으신다. 삶의 위기를 극복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서부터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쓰임 받아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난 사사가 바로 삼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면 우리 마음이 변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옛 성품의 욕구, 옛사람의 죽은 자아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위기 때마다 하나님이 자비하심으로 구해주셨다면, 삼손은 더 큰 힘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변해야 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빚어주시는 때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마음에 변화가 없는 헌신은 예배가 아니다.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변화된 곳에서부터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든 우리 삶에서 예배하든 마음이 변화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힘을 성경은 순종이라고 하고, 순종이 예배”라고 했다.
김 목사는 “삼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아도 기생을 보면 기생에게로 들어간다. 우리가 느끼는 성적 욕구는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거룩한 것, 선한 것이지만 다스리지 못하면 정욕이 된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로 여기지 않으면 성적인 욕구는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 정욕으로 돌변한다. 정욕에 빠지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욕과 싸우지 않는 한 우리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 고 했다.
이어 “거룩한 신년 첫날에 왜 이런 설교를 하고 있을까? 엑소더스를 했으면,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서 시내산에 들어왔다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확인했다면, 광양의 삶이든 가나안에 들어왔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우리가 드려야 할 응답”이라고 했다.
이어 “밤의 여인 들릴라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엄청난 대가를 제안한다. 지금 무슨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정욕에 불타는 삼손과 탐욕에 불타는 들릴라가 싸우는데 누가 이길까. 들릴라는 돈이 인생에 힘인 여자다. 돈이라면 자기의 몸도 영혼도 팔 수 있는 여자다. 정욕이 위험한 이유는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정욕에 사로잡히면 나실인이라는 자기 정체성, 자신이 사사인것조차 잊어버린다. 이것이 얼마나 비극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바로 삼손”이라고 했다.
그는 “이 시대는 정욕적 성적인 일탈 행위를 가볍기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전쟁, 기근, 전염병 너무나 무섭다. 사람들이 전쟁이나 사회악, 공평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피토하며 싸우면서 성적인 일탈 문제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존 파이퍼 목사는 ‘전쟁은 우리 몸을 죽이지만 정욕은 우리의 영혼을 죽인다’고 했다. 삼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일상에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사사였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자였다. 무엇이 참된 예배인가. 무엇이 하나님의 힘인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근원이 되는 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질병보다도 악을 미워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 교회가 질병을 더 무서워하는가. 악이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고, 악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악과 싸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리니까 우리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부터 악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2022년을 살아갈 힘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우리 교회가 쓰임 받는 사실보다도 내 마음에 찾아오는 정욕과 악과 싸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 매일 매일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비록 내가 고난, 질병, 실직 등 위기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내 마음에 살아계시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라고 했다.
이어 “내 힘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가. 나실인이라는 삼손은 수많은 능력을 경험했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없었다. 자기 충동에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누구든지 사랑했다. 삼손은 여자를 사랑했지만 우리는 꿈, 돈, 무기력을 사랑할 수도 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삼손처럼 여우를 잡은 것도 아니고, 힘을 써서 성전 기둥을 무너뜨린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는가. 그분이 마음과 삶을 통하여 온전히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거절하실 때조차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을 묵상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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