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동계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인권문제로 미국을 중심으로 보이콧을 하는 등 여러 이슈들이 있지만, 올림픽 경기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3년 전에 우리나라 평창에서 열렸던 동계 올림픽 경기 중에,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경기는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경기였다. 500m에서 경쟁한 이상화 선수와 일본의 고다이라와 선수는 승패를 떠나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 이상화 선수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고다이라와 나를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레이스를 마친 고다이라는 환호하는 일본 관중들을 향해 ‘쉿’ 동작을 취했다. 다음 주자인 이상화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금메달을 따고 일장기를 두른 채 트랙을 돌던 고다이라는 갑자기 멈춰서서 이상화를 기다렸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을 쏟고 있는 이상화를 포옹하면서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말했다. 영어로 “I still respect you(나는 널 여전히 존경해)”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라이벌이자 우상에 대한 찬사였다. 이상화도 “나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화답했다.
올림픽이 상업적이고,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선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두 사람에게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상화는 진정한 라이벌에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위대한 패배자였다. 고다이라 역시 패자를 위로하고 보듬은 아름다운 승자였다.
두 선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두 선수가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올림픽의 본질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우리가 늘 드리는 예배지만, 예배의 본질이 뭘까? 예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일까?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본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 말씀을 개인적인 신앙으로 적용하는 말씀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면 이 본문이 공적인 예배의 본질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모든 동사가 복수로 되어 있다. 이 동사들은 개인적이고 사적이기보다 집합적이고 공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20절을 보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 예언이라는 말은 공적인 것이다. 26절에 나오는 거룩한 입맞춤도 어떤 모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27절에서 바울이 모든 형제에게 편지를 읽어주라고 말한다. 그 모습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공적인 예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공적인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예배, 바울이 말하는 예배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울은 공적인 예배에서 첫 번째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로 기쁨을 언급한다. 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을까?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이 수도꼭지 트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여기서 기뻐하라는 말은 한 단어가 첨가되어야 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4:4)
우리가 어떻게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을까?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모습,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모임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바울은 지금 단순하게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즐거운 예배를 드리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배자들이 너무나 침울하게 예배를 드린다. 여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다고 침울하게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모든 예배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기쁨과 찬송이 넘쳐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이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은혜들이 얼마나 부요한지, 얼마나 풍성한지를 기억할 때 찬양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내가 행한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행하고 계신지를 믿는다면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다.
찬양은 상황이 좋아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유일한 동기는 그분과 함께하며 그분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최근에 하나님을 진실로 찬양할 때가 언제였는가? 다른 뜻 없이, 단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찬양은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해준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왕 되신 하나님의 뜰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구나 찬양하기 싫을 때가 있고 기뻐하기 힘든 때가 있다. 바로 그럴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찬양하다 보면 기쁨과 즐거운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아무 조건 없이도 하나님을 찬양하길 바란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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