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꾼’ 듣기만 해도 참 좋은 이름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교회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봉사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목회자 중에도 저분은 정말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성도는 참 행복할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3:2a).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표현이다.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일꾼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소개를 받을 때 디모데와 같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운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디모데같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길 기대하신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일꾼은 어떤 사람일까? 먼저,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영혼이 구원받기 원하고 영혼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디모데와 실라가 복음을 전한 결과로 탄생한 교회다. 복음을 전하자 그곳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었다. 구원의 역사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자 도시에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바울은 황급히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떠난 것에 대해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인기와 명성을 좇아 사역하다가 어려움이 오니까 야반도주했다고 비난을 한다. 이 비방에 대해서 바울이 변호를 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17절). 여기서 ‘떠났다’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한 번만 나오는 헬라어 동사다. 이 동사는 자식을 빼앗긴 부모에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난 것은 원해서가 아니었다. 원치 않는 강제적인 이별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다. “내가 떠났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요 내 얼굴이었다” 지금 너희와 얼굴이 잠시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만은 항상 너희와 같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런데 왜 돌아가지 못했을까? 18절을 보자.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막았다’는 말은 길이 망가져서 지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사탄이 길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19절과 20절을 읽어보면 바울이 얼마나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방문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여기서 ‘기쁨’은 현재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말한다. ‘영광’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미래에 받게 될 영광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현재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누구라는 것인가? ‘성도들’이다. 장차 주가 오실 때 미래에 내가 받을 면류관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바울의 기쁨과 영광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현재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미래에 받게 될 영광이 한 영혼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동원 목사님이 지구촌교회에서 2010년 은퇴하실 때가 기억이 난다. 12월 마지막 주일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다. 그때 나는 한 주 전에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목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때가 목사님께서 지구촌교회를 개척하고 20여 년간 목회하시고, 담임목사직을 은퇴하는 주일이었다. 목사님은 말씀 시간에 많이 우셨다. 감정적으로 힘든 주일이었는데도, 목사님은 우리 전도사 부부에게 시간을 내주셨다. 목양실에 따로 불러 덕담을 해주시며 축복해 주셨다. 책도 싸인해서 주시며, 아내가 몇째냐고 물으셔서, “둘째이고, 제가 첫째입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목사님께서도 첫째시고, 사모님이 둘째라고 하시면서 격려해 주시고 축복해 주셨다.
말씀을 준비하는데 그때 일이 생각났다. 한 교회의 담임목회를 마무리하면서 감정적으로 참 힘들고 어려운 시간인데, 젊은 전도사 부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축복해 주셨던 목사님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졌다.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도 영혼에 관심을 가진 귀한 성도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병원에 목원이 입원했을 때 매일 방문해서 위로해주고, 나주에서 서울에까지 찾아가서 방문해주는 분이 있다. 낙심한 영혼이 있을 때 어떻게든 위로하고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성도님들이 있다. 성도가 아프고 힘들 때 음식을 준비해서 챙겨준 목자들이 있다.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특별새벽기도 간식으로 섬기는 분이 있다. 목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말없이 조용히 섬기며 위로해 주는 리더가 있다. 미취학, 어린이, 청소년, 어와나, 청년 목자로 섬기면서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성도님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이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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