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퍼뜩 떠오를 것이다. 마크와 재클린 펠드먼(Marc and Jacqueline Feldman) 부부는 『소설보다 이상한 사람』(Stranger Than Fiction)이란 책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두려움과 관련하여 질문한 결과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예상 순위 1위인 죽음은 기껏해야 6위 밖에 되질 않는다. 1위는 2위와도 큰 격차를 보인 ‘연설’(speech)이었다.
[2] 실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자신의 연설 실력과 외모를 평가하기 위해 자신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설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할 것인지 싫어할 것인지 모른다는 것과 그들의 평가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두려움을 능가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나를 향한 타인의 판단에 대한 두려움은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주원인이 된다.
[3] 한 젊은 엄마가 솔직하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나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속으로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누가 연락도 없이 불쑥 집에 찾아왔는데 집이 엉망일 경우 나의 부족함을 들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사람들 앞에서 버릇없이 굴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답니다. 또 성급하게 말하고 나서, 횡설수설하고 나서, 언성을 높이고 나서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공허함에 빠질 때도 있고요,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감정이 내 속을 뒤집어 놓아요.”
[4] ‘나를 향한 타인의 눈, 타인의 평가와 판단’, 이것보다 사람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이 보는 나를 제일 두려워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보는 나이다. 남이 나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내 가족이 보는 나’도 한계가 있다.
[5] 가장 두려워할 것은 ‘내가 보는 나’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 물론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사람의 폐부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나’이다.
고전 4:3-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6] 바울의 결론은 이렇다. 하나님께 평가받을 생각을 하고 사역하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에 때로는 초연할 필요가 있고, 자기 자신의 평가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판단과 평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바울이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평가받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판단하실 하나님을 다른 심판자와 대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7] 즉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평가와 판단이란 말이다. 신앙 시인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이 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하나님의 평가와 판단에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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