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경이가 사는 곳은 찻길도 없는 외딴 시골 마을입니다. 오갈 수 있는 길이란 기찻길밖에 없죠. 게다가 기차역이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언제 기차가 지나갈지 모르는 위험을 늘 감수해야 합니다. 고등학생인 준경이와 누나는 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기찻길을 지나 기차를 탄 뒤 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왕복 다섯 시간의 긴 여정을 거쳐야 합니다. 준경이의 소원은 누나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기차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와대에 계속해서 편지를 보냅니다. 간이역 하나라도 만들어 달라고 말이죠. 준경의 호소 때문인지 마침내 나라에서 간이역 건립을 허가하고, 준경이는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직접 간이역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준경 가족에게 담긴 가슴 먹먹한 사연이 간이역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레트로 감성
영화는 손편지나 VTR, 게임기와 같은 레트로적 감성을 물씬 풍기는 장치들을 활용해서 옛 시절을 아련하게 추억하게 하는데요. 이런 기법은 최근 한국영화의 트랜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그 시기는 지금만큼 모든 게 풍족하지는 못했습니다. 교통이나 통신수단의 미비는 이 영화에서처럼 때로 누군가에게 큰 불행이자 평생 흉터로 남을 상처를 안겨주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영화는 그 시대의 아름다운 인상을 포착해내려 애쓰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건 모든 것이 풍족해졌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팍팍한 지금, 그 옛날을 좋았던 시절로 각색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바람을 영화가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효용보다 중요한 것
준경이네 마을에 기차역이 없던 이유는 이용객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간이역’이란 명칭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붙여지는데요. 있는 역도 폐쇄하는 마당에 간이역을 새로 짓는다는 건 효용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우리네 삶에 있어서 효용이 전부가 아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간이역에는 효용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간이역을 지키는 내용이 공중파TV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정도니까요. 따지고 보면 준경이가 서울에 있는 과학고에 진학할 기회를 마다하는 것도 준경에게는 성공이라는 양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꿈, 상처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서라도 기차역을 만들겠다는 준경이의 꿈은 그저 치기 어린 소년의 바람만은 아니었는데요. 준경에게 있어 기차역이란 상처에 덧바르는 연고와 같은 것이자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끔 해 주는 디딤돌과도 같은 것이었죠. 준경이의 또 다른 꿈은 우주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학 천재였던 준경에게 꾸지 못할 꿈은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준경이는 어린 시절 입은 상처 때문에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못합니다. 그런 준경이를 흠모하는 소녀 라희는 이렇게 말하죠. ‘니가 꿈을 이루면 뮤즈(천부적 역량을 지닌 남자에게 예술적·학문적 영감을 불어넣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가 되겠다는 내 꿈도 이뤄지는 것이다’. 이 말은 그저 청춘남녀의 밀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와 연결되는데요. 영화 말미에 준경이가 꿈을 이룰 때 비단 준경이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누나의 깊은 상처도 치유됩니다.
기적
영화의 제목은 중의적입니다. 대통령께 편지를 넣어 일이 성사되도록 했다는 것, 게다가 주민들이 직접 기차역을 지었다는 건 상식 밖의 놀라운 일이기에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구요. 영화 말미에 준경이가 자신의 힘으로 놀라운 성취를 이뤄내는 것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쩌면 남부러울 게 없는 국회의원의 딸 라희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의 시골 소년 준경에게 반해서 사랑을 이룬다는 것도 기적일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차가 내는 경적 소리를 기적이라고 합니다. 기찻길은 있지만 기차역이 없던 외딴 마을에 기차가 기적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장면이란, 그 자체가 기적인 셈이죠. 영화는 이렇게 선의로 무엇인가를 계속하면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란 성취를 넘어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나지막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꿈을 꾸라고, 그 꿈을 간직하라고,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포기하지 말고 달려가라고 우리에게 응원가를 불러 줍니다. 꿈이란 만들어가는 것임을 믿는다면, 바울 사도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_갈라디아서 6:9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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