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꽃미남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탤런트 출신 김성일 집사가 1일 CTS '내가 매일 기쁘게' 코너에 나와 신앙간증을 전했다.
15년 간 탄탄대로를 걸어온 연예인 생활을 홀연히 접고 20년 만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다시 나타난 김 집사는 안부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하나님의 고난 학교를 다녀왔다. 이제 광야 생활 끝물인 것 같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탤런트가 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김 집사는 "배우가 되려고 된 건 아니었다"며 친구가 우연히 충무로에서 CF를 찍고 3만원을 벌어온 게 계기가 되어 자신도 신인 탤런트 입사원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서류가 통과돼 배우가 되었다고 했다. 이후 김 집사는 만만치 않은 배우의 길을 15년 동안 달려왔고, '배우로서 이룰만 한 건 다 이뤘다'는 생각에 연예계 생활을 관두고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
음향 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오디오 동호회의 운영자로 일하게 됐다. 당시 세계적인 화두는 5.1 채널 음향이었다. 아직은 입체적인 사운드 구현이 안되던 시절이었다. 김 집사는 "5.1 채널에 대응하는 헤드폰을 구하고자 전세계를 찾아 헤맸다"며 "결국 어디서도 이를 만들지 못하겠다더라. 그래서 동호회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며 본격적으로 발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결국 그는 세계 최초로 5.1 채널에 조응하는 헤드폰을 발명했다. 이를 통해 음향 사운드 기술로 사업을 시작했고, 시작 3년 만에 마이크로소프트, 델 컴퓨터 등 세계 굴지의 IT 회사들과 거래하게 됐다. 김 집사는 "당시 만든 헤드폰이 2003년 신기술 신제품 분야에서 베스트 5위 안에 들었다"며 "이후 전세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고 말했다.
김 집사는 이 시기를 "잘 나갔지만 기고만장했던 시기"라며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4년 만에 회사를 빼앗기고 광야생활을 시작하게 된 스토리를 풀었다. 오죽 사정이 어려웠으면 과거에 자신이 특허를 냈던 커피컵 뚜껑 특허권을 동생에게 돈을 받고 강매하기까지 했다.
김 집사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들이닥친 고난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헤쳐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하늘이 담벼락으로 막힌 것 같았다"며 당시 느낀 심정을 표현했다. 이어 "하나님의 존재 마저 의심되더라. 화가 나서 삿대질을 하며 하나님께 화를 냈다"며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한 상황을 전했다.
필사적으로 기도하던 그는 기도 중 성령으로부터 받은 응답을 고백했다. 김 집사는 "지금 죽어도 좋으니 제발 저를 한 번만 만나달라고 기도했더니 성령의 응답이 들려왔다"며 "그 응답은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도응답을 받은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경을 제대로 읽고 공부한 적이 없었다"며 이후 성경 공부에 매진하고, 말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당시 받은 은혜와 깨달음을 바탕으로 김 집사는 '성경으로 모든 일을 분별하고 각성하자'는 취지에서 기독교 각성 운동을 시작했다. 김 집사는 안 팎에서 잡음이 나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적 원인을 "교회에서 말씀이 사라지고 세상의 시스템에 맞춘 프로그램들이 넘쳐난 탓"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회의 몸집은 커지고 시스템은 체계화됐지만 말씀이 무너지니까 사상누각이더라"며 Sola Scriptura(오직 말씀으로) 정신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김 집사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남아야 간증"이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에서 말씀 공부를 특화 및 세분화시켜서 더 열심히 할 것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당부했다. 특히 차세대를 위한 성경 공부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그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사는 게 내려놓음의 의미"라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과정이 곧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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