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지난 8일 TGC 코리아 복음연합 홈페이지에 ‘잊혀진 기도’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최 교수는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기도의 언어는 통성기도와 묵상기도가 일반적인 것 같다. 하지만 기도는 그 내용과 방법 면에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내용면에서는 감사기도, 찬양기도, 축복기도, 회개기도, 간구기도, 탄식기도, 중보기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며 “방법적인 면에서는 묵상기도, 말씀기도, 노래기도, 쓰기기도, 몸기도, 구송기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초대교회 때 형성된 중요한 경구가 있다. 바로 ‘기도의 법이 곧 믿음의 법이다’(lex orandi lex credendi)라는 경구다. 이 경구는 5세기의 수도사 아퀴테인의 프로스퍼(Prosper of Aquitaine)가 말한 것”이라며 “이 경구는 기도의 법과 믿음의 법을 형성해 왔다. 기독교 역사에서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유지해 왔다. 기도와 믿음은 중요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믿음과 삶의 방식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프로스퍼의 경구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형성하기 때문에 기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며 “특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기도하는 법을 아는 것은 우리의 기도생활에서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기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시편의 탄식 기도”라고 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와 회개와 간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시편의 애가는 개인과 공동체가 슬픔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말한다. 시편의 애가는 파괴적인 상황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이들의 정직한 기도였다”고 했다.
또한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이런 형식의 기도를 ‘불평 기도’라고 불렀다. 그는 ‘성경에서는 착한 이들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날 때, 그들은 마음껏, 그리고 시시콜콜 하나님께 불평한다. 그리고 성경은 그처럼 불평하는 기도를 지혜로 간주한다’고 하였다(James Packer and Carolyn Nystrom, Praying, 181)”며 “이러한 기도는 성경 전반에 걸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슬픔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기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하나님 앞에 표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면, 이러한 기도는 현실을 부정하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과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자기 기만적인 의를 추구하며 살게 할 수 있다”며 “그러므로 부정적인 감정인 분노와 불평을 억눌러서 내면의 무의식 속으로 흡수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억눌린 부정적인 감정은 매우 해롭다. 그것은 낙심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질투, 심한 조롱, 비참함 등의 뒤틀리고 파괴적인 행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에서 불평과 탄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상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라며 “플라톤은 인간 이성이 원활하게 작용하려면 감정을 통제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사상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은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허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낳게 되었다. 나아가 오늘날 왜곡된 경건이해 때문에 지나치게 많이 슬퍼하는 사람이나 탄식하는 사람들의 믿음은 의심받기까지 한다. 사실 심각한 상실로 고통 받은 후 깊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정서적 장애가 있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단지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보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대신 문제를 해결할 열쇠만을 찾게 된다”며 “나아가 인간이 단지 부정적인 감정을 바꾸려고만 할 때 하나님을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기술자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기도의 여정에서 자신의 내적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영적 가면을 써서는 안 된다”며 “부정적인 감정과 믿음은 중요한 관계가 있다. 불완전한 인간의 믿음은 의심과 불평 없이 자랄 수 없는 특성이 있다. 의심과 불평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믿음은 의심, 불평, 즉 참된 의심과 불평으로부터 자란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의심과 불평을 피하려하기 때문에 올바로 기도할 수 없음에도 적극적으로 의심과 불평을 회피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자아를 만들게 되고, 그런 자아의 영속성을 정당화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의심, 분노, 불평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자아의 가면을 벗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어 “그리스도인들이 바람직한 의심, 분노, 불평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파괴적인 의심, 분노, 불평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의 경험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며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바람직한 의심, 분노, 불평과 파괴적인 의심, 분노, 불평은 내용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파괴적인 의심, 분노, 불평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간에 바로 쏟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의심, 분노, 불평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놓은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인간에게 쏟아내면 정죄와 공격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 탄원하면 간구가 된다. 시편에서 탄식 또는 불평 기도의 목적과 탁월성이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시편의 불평 자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불평(자기 투영)이 변형되어 가면서 내적 치유와 성숙을 경험하게 되고, 보다 더 깊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며 “기도가 불평에 의하여 시작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변형을 경험하는 신비적인 경험이 되는 것이다. 시편의 불평기도는 그 불평 자체에 있기보다는 자기 변형을 위한 한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도는 성화, 변형의 여정, 즉 하나님의 은혜와 치료를 경험하는 여정이기도 하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