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8시 반 가량 되었다. 늘 새벽에 잠들었다가 늦어도 아침 5시쯤엔 깨는데 오늘 아침은 왜 그리 늦게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얼른 카톡을 확인했더니 이동원 목사님께서 오늘 시간이 나면 필그림하우스에 놀러오라 하셨다. 얼른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모처럼 가평을 향해 차를 내달렸다. 장소는 가평 자라섬 닭갈비 식당. 처음 가는 곳인데 식도락가인 이 목사님이 정한 곳이니 엄청 맛있는 식당임이 분명했다.
[2] 식당에 들어서니 이 목사님과 처음 보는 분이 계셨다. 호주서 온 선교사라고 이 목사님이 소개해주셨으나 잘 모르는 분이었다. 닭갈비와 막국수와 감자전이 너무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보여줄 곳이 있으시다며 5분 거리에 있는 충혼탑으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6.25 때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영연방 4개국이 중공군과 가평에서 맞붙었고, 수적인 열세에도 5배가 넘는 중공군 공세에 맞서 방어선을 지켰던 일을 기념하는 곳이었다.
[3] 6·25 전쟁 당시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알려진 가평 전투를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호주에서 왔다고 하니 보여주신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참전 용사들은 ‘가평 전투’를 기억하기 위해 거주하는 마을길과 공원, 다리 이름에 ‘Kapyong’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가평 전투 70주년을 맞아 호주 지역 내 ‘가평 길’로 불리는 것을 조사한 결과 시드니를 비롯해서 모두 9개의 장소를 찾아냈다는 보도가 있다.
[4] 6.25를 보내면서 남의 나라의 전쟁에 참전해서 피를 흘린 외국 군인들의 수고와 희생이 새로운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감사를 잊은 사람과 민족은 소망이 없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그분들의 땀과 피의 대가지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진을 찍은 후 필그림하우스로 갔다. 이 목사님과 같이 설교 세미나를 인도할 때마다 매년 3박 4일간 참석했던 정든 곳인데 이번엔 오랜 만에 방문했다.
[5] 이 목사님께서 천로역정 순례길을 보여주고 설명해주시겠다 해서 그곳을 향해 가던 중 우리 형제 단톡방에 아까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랬더니 막내 여동생이 나랑 같이 사진 찍은 분이 얼마 전 간증영상을 보고 엄청 은혜를 받은 주인공이라는 답을 줬다. 이 목사님 얼굴이야 모르는 이 없겠지만, 내 옆에 걸어가고 있는 바로 그 호주 선교사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그래서 동생 얘기를 해줬더니 이 목사님께서 윤치영 선교사의 얘기를 자세히 들려주셨다.
[6] 호주에서 감옥 다녀온 간증을 했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은혜로워서 요즘 완전 뜬 강사라는 것이었다. 몇 주 전 호주에서 감옥 간 선교사의 간증영상이 페북에 계속 뜨길래 한 번 들어봐야지 해서 저장해놓고선 여태 들어보지 못했던 그 영상의 주인공이었다. 얼마나 반갑고 놀랐는지 모른다. 책도 나오고 집회 요청도 많이 받는 소위 요즘 잘나가는 강사가 바로 그였다. 하나님이 오늘 또 다른 귀한 일꾼을 만나게 해주셨음에 너무 감사했다.
[7] 필그림하우스 천로역정 오픈하는 날 초청받아 오긴 했으나 풀코스를 다 돌아보진 못했다. 이동원 목사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직접 코스를 돌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책이다. 무려 100독이나 했다니 오죽했겠는가. 물론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나 역시 대학시절 천로역정을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다.
[8]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유명하다. 상상력을 동원한 우화 형식의 종교 소설인데, 그저 상상이 아니라 번연이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주변 장소들을 바탕으로 해서 쓴 걸작품이다. 수년 전, 번연이 자라서 활동했던 영국 베드포드의 엘스토(Elstow) 지역에 가서 천로역정에 나오는 실제 장소들을 탐방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9] 그런데 필그림하우스에서 천로역정의 내용에 따라 중요한 장면들을 곳곳에 만들어놓고 설명을 해주는 순례길인데, 정말 은혜받기 최적의 장소였다. 책의 내용과 주제를 잘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장소이다. 함께 동행한 윤치영 선교사의 입에선 끊임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10] 주변 경치도 최고였지만 천로역정 순례길에 등장하는 장면 장면들과 이 목사님의 설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은 물론 교회 단체들이 방문해서 순례길 코스를 돌면서 곳곳에서 설명을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은혜를 받을 장소로 그만한 곳은 없을 것이다. 모든 코스를 다 돌고 난 후 필그림하우스에 가서 다과를 하면서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11] 윤 선교사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경상도 사나이였다. 그 자리에서 호형호제하기로 하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이 목사님과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들녘과 푸르른 숲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 뜻깊고 유익한 날이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귀한 분들과의 만남과 교제는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12] 무엇보다 천로역정 순례길마다 등장하는 형상들과 그와 관련된 스토리와 교훈들은 천국을 향한 여정을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점검하게 해주는 소중한 청량제의 역할을 해주었다. 오늘도 주신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큰 은혜와 감동의 시간으로 채워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삶 가운데 이런 날들만 지속되기를...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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