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속의 유전 정보를 편집하는 것을 유전자 편집이라 하며,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가장 대표적인 유전자 편집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12년 개발돼, 각종 동식물의 형질 개량과 질병 치료 등에 응용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11월 중국에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유전자 편집 기술로 아기의 출산에 성공했다고 알려지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생명운동연합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문제점’이라는 세미나를 22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며 “유전자 편집기술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유전자 편집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류현모 교수(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는 ‘유전자 가위에 대한 생명윤리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유전질환과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하여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며 “첫째, 유전자 편집기술은 아직 안전성과 정확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둘째, 치료가 아니라 개선과 증진을 목적으로 유전자 편집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다. 셋째, 유전 정보를 섞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 넷째, 여러 가지 불평등의 문제와 규제의 문제, 생태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령 창세기 1장 27-28절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성을 회복하며, 나아가 땅과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은 문화명령”이라며 “하지만 레위기19장 19절, 신명기 22장 9-10절은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라고 하면서 유전정보를 섞어 새로운 생명체를 편집해 내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유전질환 치료 등 병든 피조물에 대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형상대로 회복하는 정도로만,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적용을 제약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하나님은 생명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뒤섞이는 것을 금하신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생명체 간 유전자를 혼합한다면,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도 분명 존재한다. 과학을 통해 개선 혹은 증진을 위한 유전자 편집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아 적절한 통제가 요구된다"고 했다.
류 교수는 “그럴수록 신학자와 과학자 전문가 간의 이슈를 공유하고 이에 대한 선제적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과학자가 내용을 신학자에게 설명하고, 신학자는 성경적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등 양자 간 토의가 요구된다”며 “이슈의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정보공유 및 방향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정소영 미국변호사는 “인간이 자기 발전의 설계자가 되는 시대가 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원하는 유전자는 삽입하고, 원치 않는 유전자는 잘라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장기간에 걸친 효과에 대해서는 관찰한 바도 없고 앞으로도 관찰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들이 인류의 진화와 진보라는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있는 듯하다”고 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정자와 난자의 판매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명문대학 출신의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의 정자나 난자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고 하니 이미 인간은 스스로 유전자를 조작해 온 셈”이라며 “크리스퍼 가위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유전자 변형체가 생겨나서 인류 사회를 위협한다고 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국제사회에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창조주가 정한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인간이 정한 상대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으로 바꾸어 놓았을 때부터, 다음 단계는 ‘생명나무’열매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라며 “그리고 21세기의 인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자신의 손에 생명나무를 흔들어 그 열매를 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정 미국변호사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정말 존엄하고 가치가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다고 외치는 절정의 순간인가?”라며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 한계 없이 발전하는 과학은 발전이 아니라 인간 폐지 길로 가는 급행열차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 외에도 김우진 박사, 강성호 교수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문제점에 관해 토론했다. 발제와 토론 후에는 3개 단체를 대표해서 이상원 교수(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가 ‘유전자편집기술의 바른 사용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첫째, 유전자 편집기술은 우생학적인 유전자 증강의 목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유전자치료는 성공률이 극히 낮으므로 성공률이 완전하게 확보되기 전에는 인간을 대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셋째, 전통적인 치료수단이 없고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닌 한 유전자치료는 시도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예산 대비 치료 효과가 작은 유전자치료보다 전통적인 치료방법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예산을 사용하여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섯째, 유전자변형을 통한 식량문제 해결을 하지 말고 전통적인 농경 방법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여섯째, 생태계에 근본적인 교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자의적인 유전자조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곱째, 인간과 짐승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반인반수인 키메라를 탄생시켜서는 안 된다(레18:23)”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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