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박사
최덕성 박사

유튜브 채널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하여 권리자가 신고한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상당히 정확히 골라낸다. 예컨대 예배 영상에 사용한 1800년대의 찬송가 멜로디를 '저작권침해'라고 그 영상 게시자에게 알려준다. 구글은 사람의 얼굴 사진에 마우스 막대기를 갖다대면 이름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조만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는 기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실생활에 적용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대중화를 유도하는 캠페인들이 열린다. 인공지능이 비행장 공항에서 수상한 사람을 찾아낸다. 자동차 자율주행도 가능해졌다.

인공지능 전문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학들은 서둘러 인공지능 전공 학사(B.S. in Artificial Intelligence) 과정을 신설한다. 기존의 컴퓨터 공학은 인공지능 공학으로 바뀌고 있다. 이 학과는 인공지능 입문, 컴퓨터 아키텍쳐, 알고리즘, 머신러닝, 최적화, 수학, 통계학,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 등을 가르친다.

인공지능에 관한 수많은 학술논문들이 미국, 중국, 영국, 독일, 캐나다, 한국에서 발표되고 있다. 대부분의 논문들이 영어로 발표되고 있다. 인공지능 학문 연구와 그 기능을 가동하는데 필요한 언어 곧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영어능력은 전문성을 높이는 필수 능력이다.

조만간 인공지능은 신학교육에 동원될 것이다. 첫 단계는 신학교 행정에 운용되고, 그 다음은 신학논의의 도우미로 활용할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복음전도와 영혼구원의 소중한 도우미일 수 있다. 신학자, 신학교육자, 목회자, 전도자에게 훌륭한 조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신학 명제들의 진위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 또는 로마가톨릭교회 의화론과 종교개혁신학의 이신칭의론의 옳고 그름을 파악할 것이다. 정통과 이단의 분별, 공정한 이단정죄, 위대한 이단자들의 억울함 신원에 도움을 줄 것이다. 자기도 모르고 타인도 알 수 없고 전문가도 간파할 수 없는 방언기도의 진위를 가려낼 것이다. 설교자의 설교문을 검토하고 설교 영상에 등급을 매기며 교정할 부분을 지적하는 '교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초인공지능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라 한다. 초인공지능은 지, 정, 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지능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매우 높다. 바둑게임에서 이세돌 선생을 이긴 지성을 훨씬 넘어서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고, 어느 정도의 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지닐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가지면 어떻게 되는가? 인공지능이 인격적인 존재란 말인가? 초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가진다면 법정은 그것의 도덕적 결함과 과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스스로 악과 선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까? 초인공지능의 도덕적 실패와 오류를 대속할 구원자가 필요한가? 초인공지능의 실수를 해결해 줄 초인공지능 그리스도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까?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공통점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외부로부터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고 이를 출력하는 정보처리시스템의 작동이다. 인공지능에게 자유와 자유의지가 있다면 법적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다. 법학계에는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이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이 가진 것과 동일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만약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다면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을 인간과 다르게 취급함은 부당하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 인공지능도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법학자 김영두 박사(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법)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낮은 수준의 자유를 가지지만 자유의지를 갖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김영두는 "인공지능과 자유의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낮은 수준이더라도 자유를 지니지만 인간과 동일한 자유의지를 갖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법학연구> 30권 1호, 2020년 3월, 319-354).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는 없다면, 우선 자유의지의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아래는 김영두의 위 학술논문의 초록이다.

자유의지는 자유와 의지로 구성된다. 자유란 물리적 원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자유의 개념을 이와 같이 정의하는 경우에 뇌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자유란 원인을 알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뇌는 자유롭다. 뇌의 판단의 원인을 물리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지는 동기를 갖고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심적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동기는 욕구나 두려움, 즉 쾌락의 추구나 고통의 회피를 의미한다. 그런데 욕구는 생존이나 종족번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1차적 욕구와 호기심이나 명예욕, 물질욕과 같은 2차적 욕구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2차적 욕구가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의지에서 말하는 동기는 2차적 욕구를 의미한다.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정보처리가 자유로워야 하고, 2차적 욕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의 정보처리시스템은 그 원리를 명확히 규명할 수 없다. 즉 인공지능의 출력 값의 원인을 규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정보처리는 인간의 뇌와 마찬가지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의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뇌의 활동을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인공지능이 상위인지(metacognition)에 바탕을 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고차원적 사고는 사회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공지능의 고차원적 사고가 불가능하다면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인공지능이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욕구나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욕구나 두려움은 인간에게 동기(motivation)가 되지만, 그러한 동기가 뇌의 정보처리에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확실하게 규명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욕구나 두려움과 같은 동기를 알고리즘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뇌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뇌의 비밀을 풀더라도 이를 알고리즘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여부가 다시 문제될 수밖에 없다. 뇌의 비밀을 푼다는 것은 결국 생명의 시작에 관한 비밀을 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인공지능이 의지를 갖기는 어렵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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