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좋아하는 『All In』의 저자 Mark Batterson의 말이다. “나는 신학교에 다닐 때 하나님에 관한 증거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물론 훌륭한 교수님들로부터 배웠다. 그렇지만 강의실이나 교회나 대규모 회의장처럼 사방이 막힌 편안한 장소에 앉아 강의나 설교나 연설을 듣는다고 해서 하나님에 관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 관한 증거는 모세처럼 광야에서, 베드로처럼 갈릴리 바다 위에서, 아브라함처럼 모리아 산에서 얻을 수 있다.”
[2] 이번엔 한국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독일에서 공부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 학기 동안 신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열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에 이론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충분히 답을 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3] 어느 날 그 표정을 읽은 나이 많은 목사님께서, ‘목회 현장에 나가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남부지방의 작은 마을에 교회가 하나 있는데 현재 목회자가 부재중이라는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만나 악수를 나누듯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던’ 그는 어렵게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그곳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4] 그가 부임한 다음 날이 주일이었다. 사람들은 얼굴을 들지 않고 들어와 앉았다. 그러다가 할머니 한 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눈, 코, 입 형체는 없었고, 구멍 다섯 개만 있었다. 거기는 소록도에서 나병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영호마을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왔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치자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했다.
[5]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분이 나병이 재발하여 몸과 얼굴이 부어오르고, 두 눈과 코에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다시 소록도로 보내야 한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약을 먹어 버렸다. 차라리 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만 상한 채 음식을 먹지 못해 상황만 더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는 아주머니를 방문해서 여기 계시려면 건강해야 되니까 잘 드셔야 된다고 조언했다.
[6] 그러자 아주머니는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부엌을 보니, 생선찌개가 있었다. 그 목사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자신의 숟가락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자기 담임목사의 모습을 본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목사는 그 숟가락으로 찌개를 한 가득 떠서 아주머니에게 건넸고, 아주머니는 꿀꺽 삼켰다.
그날 담임과 아주머니는 숟가락 하나로 번갈아 가며 생선찌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7] 그리고 그는 닦아도 닦아도 흘러나오는 아주머니 얼굴의 고름을 닦아주었다. 그 목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아주머니는 내게 잔잔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아주머니의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 입맞춤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참사랑이란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8]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그분과 똑같이 문둥병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신 것이다.”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의 저자인 김요석 목사의 실화이다. 과거 시카고 그레이스 교회에서 집회한 설교 테이프를 통해 나는 그분을 처음 알게 됐다.
[9] 존경을 넘어 아주 신비로운 분이었다. ‘예수님의 인성을 가장 많이 닮은 목사’라 불리운 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최근 그분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 들리곤 했었는데 알고 보니 다 헛소문이었다. 밴쿠버 한인장로교회의 은퇴 장로이자 김 목사의 매형인 배OO 장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존경심에 금이 갈까봐 조마조마했는데 가짜뉴스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분의 감동적인 사역을 시샘해서 방해하고자 하는 사탄의 모함이 틀림없다.
[10]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온전한 신앙인을 만들 수 없음을 보았다. 무엇보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맹점이 있을 수 있음도 새삼 깨닫게 됐다. 누구보다 신학교에서 성경과 설교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는가를 오랜만에 자문해본다. 다행히 나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체험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와 대학교 2학년 때에 말이다.
[11] 코페르니쿠스적인 신앙의 전회가 이루어진 그 체험 이후 내게는 뜨거운 열정의 신앙과 순종의 삶이 시작됐다. 주변 사람들이 다 눈치 챌 정도로 현저하게 변화된 삶이 분명 내게 있었다. 하지만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신학을 더 깊이 배우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교수가 되면서부터 실제보다는 이론, 열정보다는 이성, 가슴보다는 머리에 무게중심이 더 많이 쏠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12] 모세는 광야에서 비로소 하나님에 관한 증거를 얻었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그분에 관한 증거를 얻었고, 김요석 목사는 영호마을 음성 나환자 교회에서 그분에 관한 증거를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 하나님에 관한 증거는 성경 속에서나 신학교 강단에서만이 아니라 고난과 시험으로 점철된 삶의 현장에서 제대로 얻을 수 있다. 오늘 내겐 그 현장이 어디일까?
[13] 한 달 전, 억울한 일로 인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지인 장로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보고싶다는 것이다. 감옥생활이 힘들긴 해도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행복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리운 외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번 면회 와달라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오늘 내가 가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첫 번째 현장이 어딘가를 알려주는 소중한 편지였다. 여주 교도소 말이다. 오늘 여러분의 현장은 어디인가?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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