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원리가 무엇일까? 우리는 약속을 저버려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성취해 주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될 원리는 은혜를 의지할 때 기적을 본다는 것이다. 갈라디아 거짓 교사들은 이방인들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바울은 비유로 설명한다. 24~25절에 보면, 바울은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무엇을 상징한다고 말하는가? 하나는 시내산의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지상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율법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했다는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능력으로 아들을 얻으려고 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믿음으로 행동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을 구세주로 믿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사라가 하갈을 극도로 질투하게 된다. 가정은 분열과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 사이의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울이 볼 때 그들은 영적으로 여종이고, 이스마엘처럼 쫓겨난 자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거짓 교사들이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 행위를 덧붙이는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기 위해서 하갈을 찾은 것과 똑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불임여성에게 주신 은혜의 복음이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큰 물줄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바울은 27절에서 이사야 54장 1절을 인용한다.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이 예언의 말씀은 바빌론에 유배된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은 유대 나라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없이 약하고 무기력해 보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해 주신다. “지금은 너희가 무기력하지만, 연약한 자들 가운데서 나의 은혜가 역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강한 자들은 자신의 힘을 의지한다. 하지만 나는 너희를 크고 위대한 자로 만들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은 것도, 바빌론의 포로민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처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은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며 열망하길 바란다.
여름에 청년들과 함께 어려운 미자립 교회들을 돕기 위해 아웃리치를 다녀온 적이 있다. 한 교회 목사님께서 2년 전에 부임하셔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목사님이 와서 보니까 성도가 두 명이었다. 교회에서 저녁기도회를 하면 에어컨이 없어서, 더우니까 교회 문을 열어놓고 집회를 했더란다. 그런데 주민들도 여름철에 더우니까 문을 열어놓는데, 교회에서 나오는 기도소리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집회도 제대로 못 하고, 답답해서 하나님께 기도만 드리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와서 에어컨을 구입하고 설치해 줘서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회 목사님이 청년들에게 감사하며 이런 말씀을 나눠 주셨다. “부족함이 능력입니다. 모자라면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많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중에 남보다 약하고 남보다 고난이 많고, 남보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약한 자에게, 부족한 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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