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소설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게다. 그의 소설은 절제와 간결한 문체와 경험에서 나오는 사실적인 묘사로, 소설뿐만이 아닌 많은 명언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이 헤밍웨이에게 단 여섯 단어만으로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2] 헤밍웨이는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래와 같은 글을 지어 그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아기 신발 두 짝 팔아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어요)
이 글을 읽은 그는 눈물을 흘렸고 헤밍웨이에게 고액의 고료를 지불했다.
[3] “이게 무슨 소설이야?” “헤밍웨이처럼 유명한 소설가가 쓴 것이기에 감히 따지고 시비 걸지 말란 얘긴가?”라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분명 있을 게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라. 읽자마자 슬프고 아픈 감정이 화르르 밀려오지 않는가? 단 6글자일 뿐인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가 준비해놓은 신발 한 번 신어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유산의 경험이나 난산 끝에 사산한 경험, 혹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들은 누구보다 이 짧은 소설이 주는 슬픔의 의미를 잘 파악할 게다. 나 역시 아이를 유산한 경험이 있기에 헤밍웨이가 쓴 세계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 뜻하는 바를 아주 잘 이해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내용을 보니 그보다 더 짧은 소설, 아니 그보다 더 짧은 넌픽션이 떠오른다.
[5] 넌픽션(Non-fiction)은 픽션(Fiction)이 아닌 것, 즉 사람이 상상해서 만든 게 아닌 것을 말한다. 다큐멘터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 등이 그 실례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넌픽션은 뭘까? 4단어로 말이다. 이 말 아닐까? “Jesus died for us.”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니 이보다 더 슬픈 일도 고마운 일도 없다.
[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우리 위해 십자가에 달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참혹한 저주를 받으신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솟구치고 가슴이 아파온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넌픽션이 하나 더 있다.
[7] 그건 바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는 네 마디의 짧은 절규이다.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의미이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이신 분이 내뱉은 절규치고는 너무도 실망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네 마디를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은 항상 찢어지고 목이 메여온다. 죄의 삯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조차도 그렇게 두렵고 떨리는 것이었음을 보여주기에 말이다.
[8] 그렇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저주와 심판, 그리고 그분과의 단절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조차도 치를 떨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 참혹한 대가는 누가 치렀어야 했던가? 우리 아니던가? 그런데 주님이 대신 당하셨으니 이 얼마나 죄송스럽고도 감사한 일이란 말인가?
헤밍웨이가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보다 더 짧은 진실은 이처럼 우리의 가슴을 깊이 저미게도 만들고 감격스럽게도 만든다.
[9] 죄 많은 지옥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남은 생을 더 깊은 감사와 영광으로 갚아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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