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졸업 후 코이카 협력 의사로 갔던 몽골에서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났다는 최원규 선교사. 그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붙들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실까를 늘 질문하며 살아가고 있다. 약 20년간의 몽골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지난 2018년부터는 연세의료원 의료선교센터 본부선교사로 섬기며 여전히 사람을 세워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두신 곳 어디서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관계를 맺어가며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최원규 선교사와 만나 의료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는 최원규 선교사와의 일문일답.
- 약 20년간 활동하셨던 몽골에서의 사역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몽골 국립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연세친선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있으면서 두 기관을 중심으로 의료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의료선교라고 하면 대부분 환자를 보고, 수술하는 그림들을 많이 떠올리지만 제가 가졌던 의료선교의 첫 번째 사진은 의료선교사와 현지 의료인이 같이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현지 의료인과 함께 같은 전문성을 가지고 고민하고, 방향을 공유하면서 발전해가고, 삶을 같이 나누는 관계를 지속해서 만들어가는 그림입니다. 그런 사진을 가지고 의과대학과 연세친선병원을 중심으로 교수들, 교직원들, 의료진, 학생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의료인들이 어떻게 하면 전문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잘 성숙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또 어떻게 좋은 제자가 되어 함께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삶을 나눴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 교회 개척도 하고 이동 진료도 하며 여러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 연세대학교의료원과 몽골 선교의 배경을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연세대학교의료원은 1885년,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기관입니다. 이후 100여 년간 발전해왔고, 1990년에 기독 교수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1993년 몽골국립의과대학과 MOU를 맺었습니다. 특히 사람을 세우는 것에 중점을 두고, 국립의과대학 교수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학술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1993년은 연세대 의과대학 초대 학장을 역임한 올리버 알 에비슨 선교사가 한국에 온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기념비적인 해에 몽골에 해외 의료선교의 문이 열렸고, 이듬해인 1994년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시와 연세의료원이 합작해서 서양식 병원인 연세친선병원을 세우게 됐습니다. 당시 몽골은 다른 중앙아시아나 공산권 국가처럼 러시아식 의료시스템이었는데, 연세친선병원을 통해서 처음으로 한국, 미국, 유럽식 의료가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연세친선병원을 통해서 의료인의 전문화를 돕는 역할과 함께 영적인 부분에도 눈이 떠지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처음 연세친선병원을 세울 땐 크리스천이 한 명도 없었고, 통계적으로도 몽골은 1990년까지 크리스천이 없는 나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세친선병원 안에서 자발적으로 아침에 예배하는 모임도 생기게 되고, 교회에 가고 신앙을 갖게 되는 사람도 생기고,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 선교사님도 몽골에서 크리스천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 후 1997년에 코이카 국제협력의사로 몽골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남을 도울 때 오는 자기만족 때문에 갔던 것 같습니다. 몽골에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선교사님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극단적인 믿음이 있어서 타국까지 온 분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분들도 평범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재물, 명예의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몽골까지 온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믿음 때문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때 선교사님들이 무엇을 믿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성경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선교사님들과 성경 공부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5~6개월 정도 지나서 개인적으로 믿어지게 되는 일이 생겼는데, 마치 뇌를 이식한 것처럼 새로운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생기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큐티하는 것도 배우고, 신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이미 삶은 선교 현장에서 살고 계셨던 거네요.
“ 현장에 있다고 다 제자로 사는 건 아닙니다. 거꾸로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30년 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 생각의 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죠. 30년간 몸에 익힌 방식이 다시 한번 말씀으로 걸러지는 시간을 거쳤고, ‘이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가?’를 질문하는 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몽골에서의 처음 3년은 새롭게 사는 방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을 만난 순간 가장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제 삶의 주인이 다른 누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내 의지로 살아왔고,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성경은 제 삶, 제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얘기가 저에겐 심각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30년을 가지고 놀았는데, ‘주인이 바뀌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마음과 ‘주인이 바뀌었으면 주인이 원하는 대로 써야 하겠네!’라는 마음이 연달아 들어왔습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서 몽골에 왔고, 제가 가진 삶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이 그런 목적을 주신 것인가?’를 질문하며 삶의 목적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인이 바뀌고, 삶의 목적이 바뀌고, 또 하나는 사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내 힘, 내가 가진 능력으로 살았다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고 은혜로 사는 거라고 하는데, ‘은혜로 사는 건 뭘까?’,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게 뭘까?’를 묻고 경험하고자 했고, 그 질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이후 어떻게 의료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주인이 바뀌었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여쭤보았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기도했는데, 큐티를 하면서 저와 아내에게 몽골에 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냈던 3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계속 저를 찾으셨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 왜 몽골까지 데려오셔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만약 한국에서 믿었다면 선교나 타문화에 대해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몽골에서 믿게 되니 이미 타문화 가운데 살고 있고, 주위에 많은 선교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걸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또, 평생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는 몽골 사람들을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저에 대해 안타까워하셨던 마음이 몽골을 향한 마음으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우리를 쓰실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장 코이카 3년 임기가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기도하는데, 말씀과 삶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싶었고, 또 30년 동안 말씀에 순종하는 삶,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잖아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는 것이 삶이 되는 것을 배우기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배워야 할지 고민하는데, 선배가 신학교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신학교는 생각도 안 했었는데, 앞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갈 부분들, 앞으로 채울 책을 넣을 책꽂이를 하나 만드는 거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국 유학길에 올라 바이올라대 탤벗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LA 몽골교회를 시작했고, 2005년에 다시 몽골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 의료선교를 하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2015년 몽골 국립의과대학 부속병원 원장 책임을 맡았을 때의 기억입니다. 몽골은 사회주의체제의 영향으로 의과대학은 있는데 부속병원이 없이 다른 국립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체제의 변화로 점점 학생들이 국립병원에 가서 임상 실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의과대학은 부속병원을 몇 년 전에 개원하고 제게 원장 책임을 맡겼습니다. 저는 부속병원의 발전을 위해 처음으로 17명의 임상 과장을 임명하고, 첫 회의를 하려고 앉아서 몽골의과대학 교수들을 쳐다보는데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 잘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텐데 부족한 여건에서 지내온 의과대학 교수님들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다음 세대라도 좀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잘 배우면 좋은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의과대학에 신앙이 있는 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해결할 수 없었던 공허와 혼돈, 두려움, 불안함, 불확실성이 그분들의 삶 너머로 보이면서 영적으로 긍휼함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당장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그분들의 상황, 지나온 시간을 같이 공감하다 보면 기도제목이 생기잖아요. 영적으로는 그분들이 하나님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과, 전문적으로는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면 좋겠다는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두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시는가를 목격하는 게 선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의료서비스의 제공과 의료인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선 필요한 시스템들이 있습니다. 시스템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팀이 만들어져야 하고, 현지 의료인들의 눈이 뜨이면서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비, 시설, 기구들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들은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마다 변화되는 것도 다릅니다. 오랜 시간 관계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며 가는 것인데, 사실 시간이 걸린다는 전제를 알게 되면 그렇게 힘든 건 아닙니다. 당장 열매를 구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관계가 어려워지는 게 실제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의 어려움은 언제나 주어지기에 그걸 어떻게 지혜롭게 잘 풀어가는 가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연세친선병원이 2014년에 계약이 종료되었는데, 병원을 클로징 하는 때 책임자로 있는 게 어려웠습니다. 병원엔 직원들의 생계도 달려 있었고, 연세친선병원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이 없어졌을 때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때 억지로라도 계속할 수는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셔야 하는 것이지 내 힘으로 밀어붙여서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병원이 클로징한다고 하니, 저를 찾아와서 심하게 항의하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10년 이상 가까이 지냈고, 성경공부도 같이 했던 분들이었는데...또 항의할 대상은 제가 아니었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때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 같이 지금은 그냥 들어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나중에 그분들과 관계가 깨어지지 않았고, 직원들 모두 좋은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병원에선 아침에 예배가 없으니까 오히려 갈급함이 생기면서 교회에 안 나오던 친구가 교회에 나오게 되는 일도 있고, 모든 것이 다 감사했습니다.”
- 몽골에서의 교회 개척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교수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연세의료원에서 제공하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교회도 다니고 믿음을 가지게 된 분들이 있었습니다. 연수가 끝나고 몽골로 돌아와 저에게 학교 안에서 교회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국립의과대학인데 교회 모임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는데, 원래는 안 되거든요. 상관없다며 방도 자기들이 얻을 테니까 학교에서 모이자고 해서 놀랍기도 하고 귀하기도 했습니다. 주일 오후 3시쯤에 모였는데, 처음엔 10명 정도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처음 믿은 분도 있었고, 신앙은 없지만 마음이 열려 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성경공부식으로 예배를 함께 했는데, 2년 정도 모이니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학교 밖에서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몽골의 한 지역 교회에서 전문인을 위한 교회 개척을 하고 싶다며 우리 모임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같이 모임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몽골에서 잘 모이고 있습니다.”
- 현재 몸담고 계신 의료선교센터의 사역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의료선교센터는 ‘사람을 세우는 것’과 ‘파트너십’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해 ‘Avison international Fellowship’이라고 해서 의료저혜택국가 의료진을 초청해 연세의료원에서 전문 분야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매년 30여 명의 해외 의료인을 초청하고 있고, 1993년 몽골국립의과학대학 교수들을 시작으로 작년 기준 25개국 266명의 의료저혜택국가 의료인에게 연수를 제공했습니다.
또 그분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위해서 왔지만 영적으로도 열정을 가지고 함께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들은 신앙이 좋은 분들도 많습니다. 크리스천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지냈기에 체험적인 신앙도 많고, 저희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연수에 온 분들을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관계를 맺어가면,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온라인으로 계속 컨택하고, 저희가 방문하기도 하고 재연수나 초청을 하기도 합니다.
또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력 양성을 위해 의료저혜택국가 의과대학 학생을 선발해 이들이 교수로 성장할 때까지 지원하는 ‘Project Avison 10X10’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매년 10명씩 향후 10년 동안 100명의 의과대학 학생을 선발해, 학생, 전공의 및 교수 시절 총 3회에 걸쳐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지속적으로 멘토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한국 학생들의 경우는 특성화 실습이라고 해서 6주 동안 자기가 원하는 곳을 선택해 실습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010년부터 케냐에 있는 선교병원에서 실습하고 있는데,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250km 떨어진 지방에 있는 선교병원으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이 열 가정 정도 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그 병원의 영향을 받는 좋은 선교병원의 모델입니다. 학생들은 같이 일하는 선교사님들을 통해 배우고, 다른 환경의 의료서비스를 체험하고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동시에 매일 저녁 모임을 통해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같이 먹고 자면서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가까워지게 됩니다. 한국에 돌아오면 학교, 인턴, 레지던트 생활로 바쁘지만 계속해서 서로 관계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 보람 있습니다.
2002년부터 한국교회 파송 해외선교사 건강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협약을 통해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해외선교사들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를 감면해 주는 사업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600~700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비 감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약 400개 교회가 협약되어 있고, 2억 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그 외에도 선교사 파송 및 지원, 해외 환자 초청 진료프로그램 등 봉사와 선교의 정신을 가지고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의료선교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늦게 하나님을 믿었는데, 저에겐 주인이 바뀌는 근본적이고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마치 컴퓨터 운영체계, 시스템이 바뀌는 것처럼 새로운 시스템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배워가는 거였는데, 배운다는 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입니다. 선교를 준비한다면 더더욱 그런 삶에 훈련돼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 파송되어서 발을 내딛는 게 선교의 시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된 다음부터 선교적으로 사는 삶 자체가 선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선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교의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신 곳에서,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곳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옛날엔 ‘선교지’라고 명명했다면, 지금은 선교지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From Everywhere To Everywhere’. 모든 곳이 선교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일본이건 몽골이건 하나님이 두신 곳에서 그 뜻을 잘 헤아려 순종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옛날엔 가라는 명령이 지역적인 것에 방점을 뒀다면, 지금은 cross-cultural 하게 다른 문화권일 수도 있고, 다른 세대,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주민, 북향민, 다음 세대 등 여러 영역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관계하는 게 타 문화권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디든지 너무나 쉽게 갈 수 있기에 ’간다’라는 의미가 가진 지역적인 거리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다른 문화, 다른 영역과 관계하는 게 하나님께서 두신 곳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산다는 건 어떤 선교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 내 중심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내가 어떻게 날마다 순종하는 삶을 사는가가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삶, 배우자나 가족들하고의 삶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타 문화권의 사람들과 마음으로 관계하고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뭔지를 생각하며,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관계를 맺어가는 모든 삶의 영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의 전문성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이면에 있는 우리의 삶 자체에 더 큰 비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선교사님이 생각하는 선교란 무엇인가요?
“선교가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서 하는 환상처럼 생각하는 건 불편합니다. 제가 속한 인터서브 선교단체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파송하고 선교지에 간다, 선교사라는 용어도 잘 쓰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살던 것을 그곳에서도 이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곳에서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선교적인 삶은 제자의 삶이기도 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기도 한데, 사실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그 삶을 하나님께서 옮기신 곳에서 이어 사는 것입니다. 옮기신 곳에서 삶으로 나눌 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이지, 어떤 프로그램을 가져가서 공장에서 찍어 나오듯 회심자가 되고 제자가 되어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인데 어떻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상을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과 경험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건 옮기실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선교적인 삶, 세계를 품고 살 기회가 있습니다.”
- 현재 준비 중인 사역이 있으신가요?
“센터의 여러 사역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관계한 의료저혜택국가 의료영역의 사람들이 500명 정도 되는데, 공동체적인 플랫폼을 만들어서 격려하고 지원하는 ‘세브란스 원 패밀리’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하는 단계니까 잘 런칭하고 격려하고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 의료선교 방향에 대한 선교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세우는 방향, 팀워크로 파트너십을 가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합니다. 선교는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주고받는 관계이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우는 관계입니다. 시비를 가려서 옳은 걸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의 상황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역할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많은 경우 선교사들이 히어로 같은 역할을 하는데, 물론 그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빨리 후원자의 위치로 현지인들 중심으로 함께 하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의료선교의 범위가 넓기에 한 마디로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습니다. 구호부터 시작해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전문적인 의료인을 세워야 하는 등 필요에 따라서 다르지만, 다른 선교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이고 사람 중심으로 현지인을 잘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럼 그들이 그 나라의 문제를 가지고 창조적으로 지역과 상황에 맞게 만들어갈 테니 현지인을 중심으로 잘 세워가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연세대 의과대학 초대 학장을 역임한 에비슨 선교사님은 철저하게 사람을 세우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2대부터는 한국인을 학장으로 세우셨는데, 다른 선교사들도 많은데 현지인을 세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선교사님의 행적을 통해서 연세의료원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doing)’ 이상으로 투자해야 하는 것이 ‘할 수 있도록(enabling)’ 지지자 역할을 하는 것 입니다. 직접 행하는 것은 이름이 드러나기 쉽지만, 지지자로 돕는 것은 잘 드러나지 않고, 열매 맺는 게 빠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준비된 현지인들이 그 나라에서 일할 것을 생각하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의료선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나요?
“앞에 나눈 내용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의료선교사는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걸 간과하는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하는 것이지만, 의료 영역에서 자기가 관여하는 부분을 잘 알고 배워가는 자세가 정말 중요합니다.”
- 의료선교가 더 필요한 지역이 있나요?
의료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 도시에 좋은 병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영리 목적으로 있는 병원도 있고, 몽골처럼 의과대학은 오래됐는데, 병원이 성장하지 않아서 교육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병원도 있습니다. 선교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어는 곳이든지 다 필요합니다. 믿는 의료인들이 있는 지역은 그들과 동역자로 같이 잘 가기 위해 필요하고, 믿는 의료인들이 없는 지역은 기독 의료인들이 생겨나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두신 곳 어디나 의료선교가 필요합니다.
-기도제목이 있으신가요?
“얼마 전에 아내와 같이 나눈 얘기인데, 3년 전에 21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첫 느낌은 사자성어로 말하면 ‘어리바리’로, 익숙한 곳인데 낯선 곳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한데, 선교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말 편해졌습니다. 언어도 잘 알고, 문화나 역사도 공부했으니 많이 배우고 온 선교지인 겁니다. 다만 어리바리하고, 불확실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3년이 지나서 보니 ‘지지부진’이라고 정리가 되었습니다. 무언가 확실히 ‘이거야!’라고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시는 상황은 늘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뭔가 확실한 걸 기대했다면, 지금은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잘 좇아가는 것이 기도제목입니다.
또 하나는 제 책상에는 ‘건강한 공동체 세우기’라는 말이 써 붙여져 있습니다. 건강한 공동체라는 건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셔야 하고, 그러려면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그런 건강한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 저와 아내에게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E & E’라고 정했는데, 첫 번째 ‘E’는 ‘Evangelize’, 삶으로 복음을 잘 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E는 ‘Equip’으로 잘 갖추도록 준비시키고 세우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좋은 제자가 되고, 좋은 제자를 세우는 것, 두신 곳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두신 곳이 연세의료원이니까 연세의료원이 선교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기도제목입니다.
연세의료원의 큰 사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입니다. 그리고 네 개의 비전이 있습니다. 임상, 연구, 교육, 네 번째 봉사와 더불어 의료선교가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연세의료원이 좋은 병원, 좋은 교육기관, 좋은 연구기관이자 더불어 좋은 의료선교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가집니다. 그 정체성이 잘 세워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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