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후서 8장 16-24절
전쟁영화를 보면 대원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아무도 위험한 상황에서 나서지 않을 그때 위험을 무릅쓰고 해결사가 등장하곤 한다. 개인적인 이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몸을 기꺼이 희생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복음전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인생을 걸었던 바울이 생각난다. 그는 명예와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오직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자였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바울뿐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동역자도 이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함께 헌신한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의 배경은 AD 41-51년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각국 교회에서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도왔다. 바울 일행도 헌금을 준비했고, 이를 전달해 줄 동역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일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수표가 있거나, 인터넷 뱅킹으로 관리할 수 없었다. 상당 무게의 은화나 금화로 인해 이송, 관리가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강도의 위험과 칼의 위협이 너무나 컸던 상황이었다. 아무리 헌금을 선한 동기로 드린다고 할지라도 전달 과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20절에 이것을 조심함으로 하는 이유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해서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때 어느 한 헌신 된 자가 나타났다. 바로 디도였다. 16, 17절에 간절함으로 자원했다고 한다. 여기서 바울의 동역자들이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자원하는 자였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비록 바울이 디도에게 이 일에 대해서 부탁했지만, 디도는 이미 그 일에 대해 자원함이 있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꺼이 했다. 이러한 자원하는 마음은 디도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록 성경이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또 한 명의 형제도 있었다(18절). 교회는 권세 있는 자, 유명한 자, 목소리 큰 자를 통해서 이끌어 가는 것 같고, 빠르고 잘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자세히 보면 헌신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끌어 가신다. 비록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제대로 가고 끝까지 가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주의 일을 감당하면서 일을 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은 자원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 교회에서도 보이지 않게 무릎으로 헌신하는 분들이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임 받는 분들이 많다. 사람들은 우둔해서 다 잊을 수 있고 무명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주께서 기억해 주심을 믿으시길 바란다.
둘째, 검증된 사람이다. 바울은 이 중대한 일에 자원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모든 사람들을 투입시키지 않았다. 철저하게 검증된 사람을 통해서 하게 하였다. 디도와 또 다른 무명의 형제가 자원도 했지만, 그들은 검증이 된 사람이었다. 18절에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비록 이름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고린도 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 일을 형제에게 맡기면 아무에게도 비방 받지 않기 때문에 맡긴 것이다. 헌금은 민감한 사안이다. 바울은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작은 티만 있어도 공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사람에게 맡겼던 것이다. 지도자가 참모에게 일을 시킬 때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길 것 같은가? 실력 있는 사람, 성실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신뢰하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그 신뢰라는 말에 어떻게 보면 앞에 있는 것도 다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가끔 지인 목사님에게 좋은 사역자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면 최대한 신뢰받는 사람을 소개해준다. 그런데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항상 나 자신을 생각해 본다. 나는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을 소개해 주는데 과연 나는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인가?
비록 화려하지 않지만 신뢰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세련되지 않지만 믿음직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도 신뢰받는 사람, 믿음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신뢰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보면 어떤 곳에 버려져도 신뢰의 대명사였다. 노예로 팔려 왔지만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재무와 인사를 맡기는 신뢰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어떠하였나? 감옥은 소망이 없는 곳이다. 자기 하나 돌보기도 벅찬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그는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며 죄수들을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그때 훗날 술 맡은 관원장도 그를 기억해 낸 것이다. 23절에 디도를 향해 “나의 동료, 너희를 위한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교회의 사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여러분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아이콘으로 통하는가? 부정적인 사람, 불평하는 사람. 말만 하는 사람으로 통하는가? 깨끗한 사람, 투명한 사람, 진실한 사람, 신뢰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아름답게 울려 퍼지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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