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0장 15-20절
성경의 족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족보이고, 둘째는 사람의 딸들에 관한 족보이다. 전자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의 족보라고 하기도 하고 후자를 인간을 왕으로 삼은 사람들의 족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아들들에 관한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함의 자녀 중에 넷째 아들 가나안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데, 함은 노아의 둘째로서 아버지의 실수를 조롱거리로 삼다가 결국 저주를 받은 아들이었다. 그때부터 함의 자손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인간을 왕으로 삼으며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해 왔다.
구체적으로 함의 아들 가나안은 어떻게 계보가 이어졌는지 살펴보자. 먼저 15절의 시돈은 ‘고기 잡음’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 북부 해안지역에 거주했고 어업과 무역업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다음 헷은 ‘두려움, 공포’라는 뜻으로 앗수르 북방지역에 살았다. 헷은 고대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와 경쟁할 정도로 풍부한 경제력,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민족이었다. 여부스는 ‘짓밟힌 곳’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지역에 정착하였고, 아모리는 ‘높음’이라는 뜻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유대 산지에 거주하던 민족이었다. 특히 아모리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강력해서 가나안 족속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기르가스는 ‘진흙 땅’이라는 뜻이고, 히위는 ‘마을에 속한’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 진멸하도록 했지만 하지 않아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올무가 되었던 민족이었다. 그 외에 알가와 신은 레바논 산기슭에 거주했고, 아르왓, 스말, 하맛 등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았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가나안 자손들은 풍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크게 번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거주했던 경계를 볼 때, 19-20절에 나와 있듯이 시돈에서부터 그랄, 가사까지, 소돔과 고모라를 지나서 아드마와 스보임, 라사까지라 하여 팔레스타인의 1/3이나 되는 꾀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면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나안의 족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창세기 9장에 나타난 약속의 결과이자 창세기 11장에 나타난 바벨탑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창세기 9장의 약속과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있는 10장의 족보라는 것이다. 먼저 약속의 결과부터 소개하자면 하나님은 창세기 9장에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맺으신다. 노아의 때에 죄악이 관영한 땅에 하나님은 참혹한 대홍수 심판을 내리셨다. 그러나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는 심판하지 않으시고 땅을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증거가 무지개였다. 그래서 함의 자손들은 비록 저주를 받지만 하나님의 일반은총 가운데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둘째로 가나안의 족속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의 결과라는 사실도 간과해서 안 된다. 원래 인류는 한 민족과 한 언어로 창조되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보다는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고, 결국 그 욕망 때문에 흩어지고 만 것이다. 훗날 가나안 민족은 셈과 야벳민족에게 정복당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간은 창세기 9장과 11장 사이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지만 우리가 교만 한다면 하루아침에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마찬가지이셨지 않는가?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반면 인간은 또 뭐로 지음 받았는가? 재료가 무엇이었나? 흙으로 지음 받았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은 특권과 한계 사이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동물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신성이 깃들어져 있는 대단한 특권이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안 된다. 아무리 비싼 차를 타고 다니고 수백만 원짜리 명품 화장품을 발라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안타깝게도 최초의 인간, 아담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특권을 남용하다가 범죄하고 말았다. 가나안 후손들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제국을 쌓으려고 하다가 결국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너무 욕심부리며 살면 안 된다. 이 땅에 삶에 집착해서 안 된다. 너무 미워하며 살아도 안 된다. 나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강함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탐욕의 제국을 쌓지 말고, 생명을 위한 구원의 방주를 지어야 한다. 가나안의 족보를 통해 다시 한번 신앙의 옷깃을 여미고, 겸손하게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강함을 의지하며 나가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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