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예배 지난 30일 모임에서 탈북민 이희락 전도사(송파구 거성교회 중고등부)가 간증을 전했다.
이희락 전도사는 “북한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8살 되던 해 여동생이 사고로 죽게 되면서 부모님은 저를 끔찍이 사랑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제 안엔 교만이 컸고 세상의 공주와 같은 마음이었다. 23살까지 손에 물 한번 묻힌 적 없다가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5일 만에 남편이 차 사고로 죽어서 물거품이 되었다. 열흘 후엔 엄마가 뇌혈증으로 팔다리를 못쓰게 되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부엌살림을 하게 되었다. 3년 후 아버지마저 뇌혈증으로 누워있게 되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전도사는 “장사를 시작해봤는데, 빚을 지게 되었고, 청진 장마당까지 나가서 장사했지만 결국 망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돈이 일전도 없는 상황에서 청진에서 해령까지 화차를 타고, 해령에서 원성까진 길가에 떨어진 옥수수 한 알 한 알을 주워 먹으며 끝없이 걸어갔다. 힘들게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집을 팔고 둘째 삼촌이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하셨다”고 했다.
이희락 전도사는 “부모님의 재산을 노리고 이사를 진행한 삼촌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가 호미, 도끼로 맞고 도둑 누명까지 쓰면서 더는 살 수가 없어서 국경을 넘게 되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딸이 중국 갔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반대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더 압박해오는 삼촌을 피해 어머니에게 2년만 꼭 좀 살아 있어 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2007년 11월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산밖에 보이지 않는 심심산골로 팔려 간 이 전도사는 “말도 안 통하니 엄마를 찾지도 못하고 눈물만 계속 흘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을 조금 배운 뒤 북한에 연락했다. 그런데 엄마는 제가 떠난 보름 뒤 삼촌의 핍박이 심해지자 집을 떠난 것이었다. 북한은 곳곳마다 검열이 많은데 통행증이 없으면 끌려가게 된다. 환자였던 엄마는 해령 쯤에서 잡혀서 끌려간 뒤 열흘도 못 살고 죽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묘지는 다 아는데, 엄마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도 알 수 없기에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 전도사는 “탈북할 때 한국은 아예 생각도 안 했다. 집 앞에 사는 삼촌이 중국에서 잡혀 왔는데 한국을 가려고 했던 것 때문에 영원히 없어져 버린 걸 봤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죽는다는 생각에 중국에서 국적도 없이 불안함 속에서 8년을 살았지만 한국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아랫동네에 살던 북한 사람이 잡혀가는 걸 보면서 국적이 없으면 여기서 10년, 20년을 살아도 나의 소망은 이룰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한국행을 기도했다”고 했다.
그는 “브로커가 한국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을 소개 했다. 하나는 3개월 간 공부를 하고 가는데 안전한 길, 다른 하나는 바로 갈 수 있지만 안전하지 않은 길이었다. 안전한 길을 택했고, 중국의 기차역에서 선교사님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선교사님이 진화론을 인정하냐고 물어보셨다. 북한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지만 의문이 있었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이 왜 지금은 없는지 너무 궁금했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창조, 창세기를 이야기해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은 사람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만드셨다는 게 마음에 다가왔다.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이 태어난 해를 주체 1년으로 정하여 산정하는 연도 표기가 있는데,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 이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했다. 그러자 선교사님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다고 알려주셨고, 저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고 했다.
이어 “이튿날부터 잠언으로 큐티를 하는데 잠언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명언이었다. 선교사님은 성경 암송도 시켰다. 제일 처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하게 했는데,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거짓말 같았다. 창세기는 믿어지는데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주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내 자녀를 옆집 자녀를 위해서 절대 죽일 수 없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3개월을 채워야 하니까 넘어갔다. 어느날 선교사님이 ‘세상에서 방황할 때’라는 찬양을 들려주셨다. 그 찬양이 나의 마음을 찔렀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성령님이 나를 만져주셨고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셨다”고 했다.
이어 “어느 날 기도 시간이 아닌데 낮부터 기도를 시키셨다.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할 수 없이 기도의 자리로 갔는데, 성령이 내 안에 임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기도하는데 이 땅에 탈북민, 복음을 들어야 할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시 복음을 들고 이 자리로 와서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때 절대 못 한다고 했지만, 그날부터 아침 점심 저녁으로 그 기도를 하게 하셨다. 그때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에 가면 꼭 신학교에 가고, 꼭 이 땅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기도했다. 3개월을 마치고 떠나기 전날 선교사님에게 부족하지만 한국에 가면 신학 공부를 할테니 기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
이 전도사는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기간 엄청난 위험과 고난이 있을 거로 생각하며 기도로 싸웠다. 잠이 안 오다가 새벽에 잠깐 눈을 감았는데,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갈 수 있으니까 근심·걱정 말고 가라는 음성을 주셨다. 쿤밍에 도착해서 잠을 못 자다가 잠깐 잠들었을 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음성을 주셔서 함께 가는 자매님들과 교대로 계속 기도하면서 갔다. 그렇게 가는데 초소에 공안들이 많이 서 있었다. 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 주님이라는 기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섯 명이 함께 엄청나게 떨고 있는데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했다. 우린 한국 사람이고 여기 관광하러 와서 아무것도 없다고 한국말로 말했다. 우리 빨리 가야 한다고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렇게 말하면 공안이 추격해와야 하는데 우리를 따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하나님이 저 공안들의 눈과 입과 귀를 막아주셨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해서 신학교에 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하나원에서 2개월쯤 되었을 때 나이도 많은데 학교를 안 가겠다고 새벽기도도 안나갔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신학교에 붙여주셨고 꼼짝없이 세상 것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것에 빠지게 되었다. 국가에서 주는 임대아파트도 대구 지역으로 가면 내 신앙과 믿음이 없어지고 세상에 빠질까봐 포기하고 탈북민을 케어하는 곳에서 2년 반을 살았다. 이 자리 서기까지 한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이런 과정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 전도사는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속히 북한의 문이 열리겠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 하나님이 빨리 하려고 하시는데, 준비된 자가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 통일의 문이 열릴 때 한 손에는 복음 들고 한 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들고 저 땅에 갈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 통일의 문이 열리는 키가 바로 내가 되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고, 부르셨다면 하나님이 일하실 줄 믿는다. 통일의 문, 통일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 북한 지하교회에서 소리 없이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영혼들이 십자가가 달린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소리 높여서 마음껏 찬양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또한 굶주림으로 인해 북한 땅에 부모, 형제, 자녀를 두고 중국에 넘어와 유리하고 방황하는 자매들이 많다. 한국 땅에 들어온 3만 4천 명보다 더 많다.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섬겨야 하는 그 자리에 다름 아닌 우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준비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며 훈련되는 자가 되기 원한다”고 했다.
이어 “요한복음 5장에 38년 된 병자가 나오는데, 북한 땅에 병든 자들이 많다. 영으로 눈뜨지 못하고 감겨 있고, 마음엔 상처와 악한 것으로 가득한 그 영혼들이 지금 무엇을 바랄까? 하나님의 손으로 구하기 원하는 그 영혼들이 통일이 됐을 때 그 순수한 마음에 복음이 들어가 눈물의 바다가 되고 기쁨이 바다가 되는 북한 땅이 되길 바란다. 고난의 행군이란 기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을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오길 원한다. 북한을 위해서, 중국 땅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한국 땅에 와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기 원한다. 내 주변에 믿지 않는 영혼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인내하며 돌봐주기 부탁드린다. 그것이 우리에게 통일의 꿈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그 한 명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이 북한선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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