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영원한 멘토이신 고 이성헌 목사님이 마침내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완전히 이사 하셨다. 고인의 발인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어제(16일) 아침 6시에 대구로 출발했다. 3시간 가량 걸려 정든 대구서문교회에 차를 주차하고 교회 입구에 들어서니 이미 나팔수들이 고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고, 잠시 후 장로님들이 고인의 관을 들고 교회 입구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상민 아들 목사와 그의 누님인 딸이 눈물을 흘리면서 뒤따라오고 있었다.
[2] 목사님의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 목사와 손을 잡고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인사를 나누면서 고인의 관을 따라 3층 본당으로 올라갔다. 나팔수들의 애절한 찬송연주와 함께, 참여한 모든 조객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인을 맞았다.
담임으로 45년간 목회하시고 원로 목사로 아들 목사의 26년간을 지켜보시면서 71년간이나 한 교회에서 설교하고 예배를 드리셨던 정든 교회 본당 강대상 밑에 고인의 관이 자리했다.
[3] 실은, 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총회장을 역임한 고인의 명예를 기리는 뜻에서 총회장으로 하자는 권유를 여러 번 했으나 아들 이상민 목사의 뜻을 바꾸지 못했다. 총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번엔 내가 총회장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들 목사에게 권유를 했다. 그때 아들 목사는 “우리 아버지의 명예는 서문교회에 있다. 그래서 교회장으로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맏상주의 뜻과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으랴.
[4] 그래서 교회장으로 발인예배가 시작됐다. 대표기도와 고인의 약력소개와 함께 가장 신뢰가 두터웠던 장로 한 분이 울먹이며 조사를 낭독했다. 그 후 서울 서현교회의 원로 목사인 김경원 목사가 설교를 했다. 그 역시 나처럼 고인 밑에서 부교역자로 섬기면서 설교를 배운 분이다. 설교를 하던 중 갑자기 목이 메인 채로 고인에 대한 추억과 존경의 내용을 전해주었다. 나를 비롯하여 고인과 함께 사역했던 부목사들이 33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5] 그들 중 목회도 잘하고 유명세를 타는 이들이 여럿 있다. 모두가 고인으로부터 목회든 설교든 잘 배운 덕이다. 고인은 내 삶의 방향마저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고인 밑에서 목회와 설교와 인격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축복이라 생각한다. 설교 시 김경원 목사가 언급한 대로, 이 땅에서 더는 고인의 설교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한다.
[6] 고인에 관한 내 글을 읽은 여러 페친들이 어제 메신저로 고인의 설교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내용을 전해왔다. 그래서 2006년 8월 21일, 82세의 고인이 교회갱신협의회 회원 목사들에게 전한 ‘한 은퇴 목사의 후회’란 제목의 설교영상을 보내주었다. 이 영상을 들은 이들은 모두가 정말 감동적인 설교라고들 놀라며 아쉬워하는 반응들을 전해왔다.
[7] 고인의 설교를 들은 분들이라면 그가 왜 ‘설교의 대명사’, ‘설교의 요리사’, ‘설교의 예술가’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수년 전 어느 토요일, 현 총회장인 소강석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수님, 이성헌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를 잘하셨다면서요?” 그래서 내가 “이 목사님 설교를 한 번도 못 들어보셨나요?”라고 했더니 “아쉽게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들을 수 있는 게 있습니까?”라 했다.
[8] 그때 내가 보내준 그분의 설교 영상이 바로 ‘한 은퇴 목사의 후회’다. 문자로 영상을 보낸 지 40분이 조금 지나자 다시 전화를 했다. 소 목사였다. 대뜸 하는 소리가 “야, 정말 명불허전이네요. 이 연세에도 이렇게 설교를 잘하시니 한창 때는 얼마나 대단하셨을까요? 우리 교회 부흥회 모셔야겠습니다”였다. 그래서 “잘하시고말고요. 하지만 이젠 연세가 많으셔서 집회는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답하긴 했지만 속으론 두고두고 아쉬웠던 순간이다.
[9] 교육전도사 시절, 고인은 함께 사역하던 이찬수 전도사(현 분당우리교회 담임)와 나 두 사람에게 젊은 시절 설교한 설교 테이프를 하나씩 주신 적이 있다. 설교 당시는 레코드판에 소리를 녹음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테이프에다가 담아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때 그분이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시는 것처럼 인식이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고인의 후임 이상민 아들 목사는 효자 중의 효자이다.
[10] 그간 그가 자신의 부모님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섬겨왔는지는 내가 잘 안다. 1년 반 전 어머님이 먼저 가시고 홀로 남으신 아버님마저 천국으로 떠나가셨으니, 지금쯤 아들 목사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하고 슬플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설교의 거성 이성헌 목사님을 떠나보내면서 갖는 감회와 결심은 남다르다.
‘주여, 고인의 발자취를 따라 적어도 그분 못지않은 목회자와 설교자로 거듭나게 하소서!’ 아멘!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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