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 : ‘사람의 지배’ 대신 ‘법의 지배’를 통하여 통치가 행하여지는 주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려 할 때는 반드시 의회가 제정한 법률로 하여야 하고, 행정은 이러한 법률을 전제로 하여 그에 따라 행해져야 하며, 재판도 법률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이론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지만, 법치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재자인 히틀러도 법치주의를 준수했다고 하니 말이죠. 오히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국가의 발전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작용하게 됩니다.
올해들어 엄청난 아동학대 뉴스의 홍수 속에 감추어져있는 한 어린이가 부모로부터 분리된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궁금증이 생겨 관련 규정을 살펴보니, 법률에 정한 절차는 준수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준수된 셈이죠. 즉,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이 그 자체로 법률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치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졌는지, 그러한 고민이나 판단의 결과가 자짓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고민과 판단 자체를 외면한 것은 아닌지는 반드시 살려보아야 합니다.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치를 형식적으로만 지키는 것으로 한마디로 이미 제정된 법의 내용은 문제삼지 않고, 제정법에 따라 지배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법의 내용보다는 법 제정 과정에서 형식적인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하면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주장입니다.
과거에는 전제군주정치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과 사법이 법률이 정하는 절차와 내용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을 교묘하게 권력 유지를 위해 이용하고,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서만 이용하여 법률적 불법(Gesetzliches Unrecht)을 자행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는데, 바로 독일의 나치 정권을 통해 이 문제를 전 세계가 목도하게 된 것 입니다. 나치 역시 분명히 합법적으로 성립된 정권이고, 법에 의한 통치를 하였음에도 인간의 존엄을 말살케 하는 사건들이 발생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게된 것이죠.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바로 실질적 법치주의입니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인간의 존엄을 바탕에 두고 기본권을 보장하며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전제로 합니다. 즉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의 형식적 절차 이외에도 내용의 정당성을 매우 중시하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각 나라들은 형식적 법치주의를 고수하지 않고 실질적 법치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실질적 법치주의는 형식적인 것과 달리 정당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고 이것은 자칫 주관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선을 준수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빈발하는 아동학대 사건을 통해 아동복지가 강화되고 적극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화되어가는 법률과 절차에 있어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형식적 법치를 넘어 실질적 복지국가에까지 이르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인간의 존엄을 강화하고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입니다.
헌법 제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민법에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 및 의무를 정하고 있습니다. 즉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지기에 국가가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가정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접하고 오래 전 보았던 “아이엠 샘”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자녀를 양육할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를 묻는 미국영화였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질문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과연 “자녀를 양육할 자격”을 판단함에 있어 그 판단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판단에는 얼마나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동보호 분야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국가가 개인의 생활에 관여할 권한이 커지는 복지국가일수록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복지의 이름으로 개인의 생활에 개입하는 국가의 권력이 인간의 존엄과 헌법에 정한 기본가치를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지, 그것을 최소화할 다른 방안은 고려가 되었는지, 그리고, 약간이라도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이 있다면 조속한 시일 이내에 바로잡아질 방법과 기회가 충분히 부여되어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분쟁이 많아지는 사회, 일반인이 변호사를 만나야 할 일이 많아지는 사회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불안하고 예민해진 이 때가 기본을 더욱 철저히 해야할 때라고 믿습니다.
연취현 변호사(행동하는 프로라이프 법률정책위원, 변호사 연취현 법률사무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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